2000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대학가가 동면에서 깨어나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 다 이 무렵 쏟아져 나오는 각 대학의 인사를 보면서이다. 개강 전 전국의 모든 대학들은 보 직을 조정하고 새 얼굴들을 그 자리에 앉힌다. 새 학년도를 새로운 진용으로 맞는 심기일전 의 느낌을 주는 효과가 만만치 않다.

총장이 새로 선임되어 주요 보직 교수가 한꺼번에 바뀔 경우 그 대학은 한층 강렬한 주목을 받는다. 총장의 역할과 그를 보좌할 교수들의 역량이 곧바로 해당대학의 변신을 가늠하 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학년도의 출발을 알리는 인사는 대학 내에서거나 대 학간에 있어 매우 주요한 관심사가 되어 설왕설래의 여진을 남긴다.

올해는 주지하다시피 새 밀레니엄의 여정을 떠나는 출발의 해이다. 숱하게 써온 시간 분할 개념이니 이제쯤은 밀레니엄에 식상하게도 됐지만 개강을 맞은 대학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 차례 더 이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럴 만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말하자면 이번의 보 직인사는 대학마다 사정이 어떠하든 지난 여느 학년도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무게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 나라 대학들은 이런저런 평가의 대상이 되어 끊임없이 경쟁력 부문에서 여론의 난도질을 당해 왔고 최근에는 교육행정의 제물이 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전부 아니면 일부 학과에 대하여 존폐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앞에 두고 사색이 되어 있는 형국이다.

새 세기를 맞는 시점에서 이와 같은 대학의 현황이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기대 이하의 실정 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향후 대학교육의 전개를 그 어떤 정치·사회 적 이슈보다 우위에 놓으려 하는 국민적 요청은 거역할 수 없는 명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의 중심에 서서 적어도 세기의 변혁에 첫 돌을 놓아야 할 책무가 이즈음의 새 인사의 면면에 지워지게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동안 우리 나라 대학 교육의 경우 문제가 드러나면 그 책임은 대체로 정책부재의 탓으로 돌려졌다. 그런 흐름이 강해지면 거의 모든 대학 재단이 몰매를 맞는 쪽으로 흘러 왔다. 이런 저런 논의가 끝없이 계속돼 왔지만 책임 소재의 대목에서는 항상 교육당국과 학교법인이 피고의 자리에 앉곤 했다. 관치와 금권의 폐해가 교육현장에서조차 추방되지 않는 후진성이 새 세기에도 엄존한다고 가상해 보는 것은 소름 돋을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은 인재의 결집지이며 미래 인재의 양성지이다. 내로라 하는 경륜의 인재들이 대학 일 선에서 해당 대학의 경쟁력을 길러 내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대학의 주체는 곧 구성원 모 두여야 하며 특히 경쟁력을 확보하는 주체는 그 무엇보다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교수와 학생들 자신이 아닐 수 없다.

학내의 보직이나 선출직 어느 것 없이 감투나 즐기고 밥그릇이나 나누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대학행정가의 평판에 학교의 명예를 걸고 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세계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데는 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의 분발에기대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