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부터 18일간 광주에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광주항쟁 +2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주최한 +인권선교정책협의회에 위원의 자격으로 참석한 것인데 현재 일하고 있는 +성공회대가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기에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광주민중항쟁 20주년과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특별강의와 한국사회의인권 현안들에 대한 개관을 할 수 있었고, 현안문제로 인권법, 국가보안법, 장기수 송환, 조 선족 이주노동자, 여성인권, 미군범죄와 한미행형법 등의 문제를 직접 맡아 일하고 있는 분들로부터 듣는 시간도 가졌다. 인권 현실 개선의 과제를 확인하고 적극적인 인권정책을 촉 구하는 결의도 하였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새천년을 맞이한 한국사회의 인권 현실은 아직도 정말 부끄러울 만큼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까운 시일 안에 그런 숱한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18일, 새로 꾸며진 망월동 5.18 묘역을 참배하면서 다른 무덤과 달리 유독 한송이 꽃밖에 없 는 무덤 앞에 헌화하고 묘비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다. '정찬용의 묘. 1951. 5. 30생ㆍ1980. 5. 18 민중운동시위 항쟁하다 전두환 정권 계엄군에 의해 전사한 용맹무쌍한 투사'... 동행한 분들의 대부분은 70, 8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분들이었는데 그 중 386세대에 속하는 한 분이 참배를 마치고 나서 이런 말씀을 한 것이 기억난다. "요즘 대학생들이 광주를 잘 몰라요. 마치 어른들이 6.25를 이야기하고 보릿고개를 이야기할 때 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들렸었는데 지금 대학생들 중에도 그런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세월의 무상함이나 어쩔 수 없는 세대간의 간격이라는말로 위안을 삼을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나 자신,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소위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대학 에서 일하면서 과연 대학이 무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우리 대학은 과연 어떤가? 하는 자성적인 질문도 던져 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꽃잎처럼 금남로에' 이 런 노래들을 전혀 모르거나 생소하게 느끼는 세대들을 만나면서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의 엄연한 결과물인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제기되는 숱한 문제들이 청년,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 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오늘이 어제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내일을 잉태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원리 앞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6.10시민항쟁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변화를 위해 많은 대학생들이 흘린 땀과 피의 의미를 과연 오늘날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이 가슴으 로 느끼고 있을까 하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물론 역사에 대한 책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책임인 것이고 더욱이 나 자신을 포함하여 기성세대의 책임이 더 무겁고 큰 것이 분명하지만, 80, 90년대를 지내면서 소위 '대학'이 지녔던 변혁운동의 한 변수로서의 위상에 대해 단지 향수만이 아니라 발전적인 계승이 있기 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나아가 '학생'들은 물론이요 '대학'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거꾸로 돌게 된다. 새천년의 5월을 보내면서 역사적 책임을 망 각한 교육과 연구, 그리고 봉사라는 허상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쓴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