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남지역의 대학을 중심으로 30여개 대학이 북한의 민주화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그 구체적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핵심은 북한 민중을 기아에 시달리게 하 고 인권을 침해하는 김정일 정권의 교체이다. 원칙적으로 북한의 비참한인권실태는 반드시 비판받고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국제법적 합법성, 인권개념에 대한 동서간의 상이한 시각을 이해한 다음 그 방법과 시기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에 대한 민주화요구는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체제 인정 존중)와제2조(상호 내부문제불간섭)에 비추어 신중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국제법은 개별국가의 정치체제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국가승인이나 정부승인의 전제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북한이 개별국가의 자격으로서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상호 체제를 인정하기로 한 이상 자칫하면 북한의 민주화운동은 내정간섭으로 비춰져 북한과 심각 한 체제갈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본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권의 중대한 침해가 국제평화에 위협할 때를 제외하고는 인권이란 국가의 국내문제이고 다른 국가나 국제 기구는 이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의 기본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인권에 대한 동서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인권의 기 능에 대한 접근방법이 국가와의 관계에서 개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인간중심적 접근방 법이다. 그래서 서구시민혁명에서 추구했던 개인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서방국은 인권 오직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한 국가 나아가세계평화 의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경향이 사회주의권보다 약하다. 즉, 서구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인권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동구는 사회중심적 접근방법으로 사회, 경제, 문화 적 권리, 즉 단체적 인권에 중심을 두어 '평등'을 중시한다. 그래서 동구에서는 인권보 호와 세계평화증진과의 관계를 1차적으로 생각하고, 각국의 국내상황의 질을 생각한다. 북한도 그들 기준에서 볼 때 평등중심의 인권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셋째, 요구시기는 서둘 것이 없다. 현재 남북관계가 모처럼 진전되는상황에서 북한의 인권이나 민주화보다는 남북한의 인적교류를 통한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에 중점을 두 는 것이 효과적이다. 베를린 북미회담을 통해 미사일발사가 유예되고, 남한의 금강산관광객이 10만명에 이르며, 북한 고위층의 남한방문가능성 등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시 기에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넷째, 북한의 민주화를 제기하는 방법과 관련해 남측이 직접하는 것보다 UN과 같은 국제기구나 제3국이 우회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동서독의 경우 서 독은 1975년 유럽안보협력회의의 헬싱키 선언에 입각해 인적 교류의 증가를 통한 자유 로운 정보의 흐름에 제1차적 주안점을 두었다. 즉, 동독 국민에게 인적 교류를 통해 서 방의 실상을 알린 것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가져온 주원인이되었다.

서독의 경우에는 이와 같이 동독과의 체제논쟁을 피하기 위해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 았고, 동독의 정치범들을 많은 돈을 들여 서독으로 인도받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동 구권의 인권을 거론한 것은 서독이 아니라 미국 등의 주변국이었다. 즉, 인권문제에 관 한 한 동서독의 경우는 주변국과 역할분담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와같은 북한민주화와 인권문제를 법적 저촉여부 외에도남북대화의 전략면에서도 고려해야한다. 우리도 인권문제에 대해 주변국 및 국제사회(UN)와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기아문제도 소리없이북한돕기에 매진 하면 된다. 지금은 휴전선의 자유왕래를 통해 인적교류와 정보의 흐름을 넓히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장희/한국외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