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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고시 폐지를 다시 생각한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일단은 없던 일로 돼버렸지만 지난 한 달여간 행정고시(이하 행시)제도 개편안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었다. 외교부 장관 딸의 특혜 채용과 맞물려 ‘현대판 음서제도’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더니, 급기야 개편안을 유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행시 개편안이 유보되긴 했지만, 언제든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고시제도 개편의 당위성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시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란은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는 데 있어 제도의 유용성에 관한 논란, 고시 출신들의 집단 세력화에 대한 비판, 그리고 채용 과정에서의 공정성에 관한 논란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고시제도의 유용성에 대한 회의는 세계화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기에는 암기식 고시제도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각 분야에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함으로써 정부 관료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리고 미국 등에서 공무원을 이런 방식으로 충원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공무원의 충원 방식이 갖는 영향력을 한 측면에서만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전문가를 충원하는 이른바 직위분류제를 근간으로 한 미국의 인력 충원시스템이 야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른바 ‘텅 빈 중심(hollow center)’의 문제이다. 각자가 그리고 각 부처가 미시적으로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집중해 일을 하기 때문에 업무간, 조직간 조정과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미국식 인사제도의 가장 큰 문제이다. 과연 우리 정부 관료제의 문제가 단순한 미시적 효율성의 문제인지, 큰 틀에서의 조정과 협력의 문제인지를 생각해보면 공무원 채용제도 개편의 방향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의 진입장벽을 통과하면 평생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고 고시 출신들만이 요직을 독식한다는 것이 고시제도 비판의 두 번째 이유이다. 그러나 충원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특채 그 자체도 사실상 진입장벽을 통과하는 방법만을 바꾸는 것이지, 진입장벽 통과 후 안정된 직장의 보장이라는 현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시제도를 개편하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공무원의 구성이 고시 출신 대 특채 출신으로 양분됨으로써 관료제의 파편화 현상이 더 심화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직업의 안정성은 보장하되 공무원이 응집성을 가진 관료제의 일원으로 어떻게 역량을 발휘하도록 만들 것인가는 공무원 인사제도의 정교화를 통해 풀 문제이지, 단순히 충원제도의 변경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외교부 장관 딸의 특혜 채용 논란으로 고시제도 개편안이 좌초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공정성’만 확보된다면 공무원 채용제도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채용에 있어서 공정성의 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공무원 채용제도 개편 논의를 떠나 인사제도에 있어서 근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이 확보만 된다면 고시제도를 개편해도 좋다는 등식은 성립하기 어렵다. 공정성 확보는 효과적인 공무원제도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부 관료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역량도 갖추고 있다. 관료제를 허물어뜨리기는 쉬워도 이를 다시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 개편은 신중하고 점진적이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2010-09-17 오전 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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