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교수회는 대략 12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법정기구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교수회는 기성회 예산을 심의하고총장을 선출하는 정도의 기능만을 위임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각 대학 총장 후보들은 '교수회를 의결기구화 하겠다', '교수들의 의견을 전폭 수 용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했으나 제대로 지켜진 대학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이는 총 장을 중심으로 한 대학 집행부가 교수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리지 못한 채 독선적 학사운영만을 일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7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고등교육법 제6조의 규정과 지난해 2월 대통령령으로 공 포된 고등교육법 시행령 4조의 규정에 따라 '학칙보고제'가 마련됐기 때문에 대학 내 최고 의결기구로서 교수회를 출범시킬 수 있는 법적 기반은 마련돼 있다. 그런데도 교수회가 법정기구화 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칙허가제'가 '학칙보고제'로 바뀌어 대학의 자율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지만 각 대학 총장들은 교수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대학운영을 투명하고 자율적으로 수행할 의지와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총장들은 교수회를 법정기구화 했을 경우 쏟아질 교육부 관료나 타 대학 총장들의 따가운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기회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이며 용기 없는 처신에 더해서 총장 스스로가 학교운 영의 전모가 공개되는 것을 기피하는 독선이 가미됐기 때문에 교수회의 법제화는 더욱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수회가 법정기구화 내지는 의결기구화가 돼야 할 분명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교수회는 총장이 범할 수 있는 독선과 독주를 견제, 보다 신중하고 민주적인 대학행 정을 가능케 한다. 무원칙한 학사운영과 무계획적 재정투자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대학 집행부를 도와주는 역할을 교수회가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집행부와 교수회가 대학운영의 양축을 이뤄 협력하면 대학운영이라는 마차를 앞에 서 끌고 뒤에서 미는 균형을 이루며 능률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총장을 비롯한 대학집행부는 '의결기구를 거치는 것은 곧 낭비'라는 잘못된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의결기구를 통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여론을 폭넓게 수렴, 그들의 이 해와 협력을 얻어 업무를 수행하는 최상의 방도라는 긍정적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얼마전 김덕중 교육부 장관이 "교수회의 법정기구화는 곤란하다. 총장이 하는 일마다 꼬 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져서 안 된다"고 말한 것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료들이 먼저 교수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셋째, 교수들의 신분보호를 위한 교섭단체가 필요한데 법제화된 교수회가 이를 담당할 수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 9월 개정된 교육공무원임용령에 따르면 교수, 부교수의 임용권이 총장에게 돌아가고 또 2002년부터 교수 계약제 및 연봉제를 시행한다. 결국 대학운영권은 모두 총장 1인 지 하에 들어가게 됐다.

또한 징계절차도 종전의 중앙징계위원회가 아닌 대학 내 징계위원회에서 밟게 돼 있어 교수사회의 중지를 모을 수 있는 교수회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어느 모임이나 조직을 보더라도 의결기구가 없는 경우는 없다. 지방자치단체에도 의회가 있으며 초·중등학교에서도 학부모, 교사들의 대표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가 있다.

그러나 유독 대학만이 대학운영에 필요한 사항들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교수회가 의결기구화 되면 시대변화와 사회욕구에 부응하는 대학의 역할을 다 하는데 촉매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이재봉 교수(충북대 교수협의회장·전기전자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