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를 관통하는 대담한 성(性) 담론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마광수 연세대 교수. 그는 그토록 갈망해왔던 ‘표현의 자유’는 고사하고 ‘강의의 자유’까지 박탈당하는 것일까.
최근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교수회의가 마 교수에게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캠퍼스가 들끓고 있다.
학내 여론은 마 교수에게 동정적이다. 마 교수 스스로 “이지메요, 린치(私刑)”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학생들도 “이미 징계를 받은 마 교수에게 또 이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두둔하고 나섰다. 수업지원부 관계자도 “전공 전임교수에게는 학기당 6시간 이상 강의 배정이 원칙”이라며 “국문과 교수간 알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 입장에선 당혹스럽다”고 말한다.
제자 시 도작 논란, 홈페이지 폐쇄 조치 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마 교수에게 동료 교수들은 올해 초에도 “책임을 지고 떠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징계위원회 결정으로 2개월 정직과 함께 올 1학기 강의를 하지 않았던 마 교수는 2학기에 교양강의 ‘연극의 이해’로 복귀했지만 다시 한번 강의 무배정 통보가 날아든 것이다.
마 교수는 이에 방우영 이사장, 지훈상 총장 직무대행, 홍종화 교무처장 등에게 보낸 탄원서를 14일 연세대 홈페이지(http://www.yonsei.ac.kr/)에도 올려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는 “불투명한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할 뻔한 2000년부터의 연장선상”이라며 “도작에 대해서는 수차례 사과의 말씀을 올렸고 학교의 징계도 달게 받았다. 핑계거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울화증에 줄담배를 피워문 마 교수를 동부이촌동 그의 집에서 만났다. 아직도 연세대 문과대학생들에게 회자되는 “너희들은 나보다 젊은데 왜 나보다 야하지 못하냐”는 일갈도, 졸업을 맞은 국문과 학생들이 “후배들에게 남길 것은 마 교수의 강의 뿐”이란 현수막을 걸었다는 일화도 모두 옛일인 마냥 그는 수척했고 피로해 보였다.
- 강의 배정 않겠다는 입장을 정식 통보 받았나요?
“조교를 통해 학과장 뜻을 전해 들었어요. 전공수업 안 주는 건 고사하고, 이건 알아서 나가라는 소리야. 내 제자가 대학원에서 가르쳐. 문과대학장, 국문학과장 다 내 수업 들었던 사람들이야. 서열 따지는 게 아니고, 인간적인 문제야. ‘교수회의’라는 것도 두루뭉술해. 나도 교수인데, 나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학교 징계와 무관하게 내쫓겠다는 건데…”
- ‘이지메’, ‘마녀사냥’ 같은 전에 없이 격한 표현을 쓰셨네요.
“이번에는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요. 2000년에 너무 친한 후배였던 학과장이 재임용 탈락시킨다고 면전에서 나가라고 하는데, 그땐 쇼크 먹어서 항의도 못하고 입원부터 했지. ‘사라’ 때부터 잘리고 호봉이 뒤바뀌고 했지만, 제가 연세대에서 교수 된 햇수로 따지면 최고참이예요. 한국말도 못찾겠고, ‘이지메’라는 뉘앙스를 대신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썼어.”
- 잊을 만하면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데요.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게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낼 때 그때부터야. 89년 1학기였지. 그때는 ‘시니어’가 아니라서, 한 학기 강의 못받아도 참았어. 전공과목 빼고 ‘교양국어’로만 주고 그랬었는데,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 교수들은 양심이 있었어. 교양이라도 줬으니까. 올해 도작은 진짜 누차 사죄했어요, 학교에도 할 말 없다, 벌주는 대로 받겠다고 했어. 그래서 벌 받았는데, 국문과 교수들이 이러는 건 ‘사형(私刑)’이지, 사형.”
- 발단은 2000년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들 하더군요.
“핑계를 잘 만난 거야. ‘국문과 망명정부’ 사건이라고 언론에서도 말이 많았어요. 2000년에 나를 재임용 탈락시킨다는 거라. 연구 질 미만이라고 했는데, 사실 내가 국문과 교수들 중에 제일 많이 썼어. 하여튼 그 일이 발단이 돼서 대학원생들이 들고 일어나고 했는데 그 학생들, 11명인가? 다 떠나게 만들고 동문인 다른 대학 교수 16명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피박살이 났었지. 내가 법원 공포증이 있잖아. ‘명예훼손’ 그거 사람 골탕먹이는 거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즐거운 사라’ 등 유난히 필화 사건이 잦았던 그에게 치명타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받은 2000년의 ‘재임용 부적격’ 판정이었다. 마 교수의 전공은 창작이 아닌 ‘문학이론’이기 때문이라는 게 국문과 측의 변(辯)이었다. 당시 학과장이었던 김철 교수는 “학술 연구자로서의 의무적 연구 활동을 한 게 없다”라는 말로 입장을 정리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작가, 야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소설가 정도로 인식되는 마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은 사실 ‘윤동주 연구’다. 윤동주 시 연구자에게는 필수 참고 논문으로 꼽힌다. ‘상징주의 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문학과 성(性)’ 같은 문학이론서도 많이 펴내 동료 교수들에 견주어 연구실적이 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다.
-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학술연구 부족이 문제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올해 저작이 학술서적, 시집, 문화비평집, 에세이 4권 했어. 이랬는데도 실적 부족하다고 탈락시키면 잘못된 거야. 내가 쓴 소설 야한 거라고, 글도 아니라고 제외한다 쳐도 ‘윤동주 연구’는 학계도 인정하는 거야. 우리나라 최초니까 100% 인용되지. ‘문학과 성’은 대학 교재로 쓰이고 있어. 그렇게 치면 국문과 교수 중에 나보다 열심히 안 하는 사람도 많아요.”
- 동료교수와의 불협화음이 해결될 기미는 없는지요.
“언어폭력에 자지러졌어요. 폭력에 대한 공포. 선배 권위 부리겠다는 게 아니라 기본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건데, 배신감에 질려버렸어. 예전처럼 고소 당해버리면 어쩌나. (날 쫓아낸) 교수들 복도에서 만날까 봐 연구실 나가는 게 두려워요, 만나면 하루종일 가슴이 떨리고. 심지어는 그 중 한 교수는 내가 필화 사건 때문에 잘렸을 때 내 복직위원장 했던 친구야.”
- 돌이킬 수 없어 보이네요.
“실력평가는 누가 하는 건지… 버젓이 내 전공이 있는데 엉뚱한 교양수업을 주는 건 아니야. 창작론 수업도 다 강사 불러서 하고,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 대학원 강의는 신성하고 교양강의는 아무에게나 맡기고 그런 건지 그 개념도 웃기지만, 예전 일 다 털었으니까 학생들 강의로라도 만나고 싶어. 강의해야 보람도 느끼고, 솔직히 월급 없으면 생계 유지도 안 돼요.”
-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요.
“이사장, 총장 직무대행, 교무처장한테 다 탄원서 보냈어요. 문과대학장(최유찬 국문과 교수)은 구두로 전했고. 교수회의 결정이란 게 목소리 큰 몇몇이 정해버리는 거야. 싸움에 안 끼고 싶은 다수 사람들은 그냥 말 안 하고, 또 나 내쫓는 걸 주도했던 교수들이 실세로 있을 때 뽑은 조교수·부교수들이 그쪽 입장을 들어주니까… 이런 일은 사실 연대 역사상 처음이래.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지. 아무리 편 갈라서 싸워도 강의는 하게 해야지.”
마 교수는 학교측의 조율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강의는 교수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그. 내년 1월까지 조정이 안 돼 끝내 강의 배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가 그렇게 치를 떨었던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예전엔 공권력의 폭력을 경험했는데, 지금은 교수사회 폭력을 겪고 있다. 무섭지만 ‘이제는 싸워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어찌 됐든 도작은 제가 잘못 했어요. 누차 말했지만 다시 용서를 빌어요. 그러나 이번 일은 내 보기에 핑계야. 그때 제일 떨었던 게 학생들이 과연 날 용서할까, 였는데. 그때도 나가라는 학생은 없었어요. 지금도 학생들이 학보 사이트(http://www.yondo.net/)에 지지 댓글을 올려주고 있어요. 학교가 책임을 지고 중재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
마 교수가 언급한 연세대생들의 댓글 중에는 “틀린 것과 다른 것은 구분돼야 한다. 마 교수는 틀리지 않고 다를 뿐”이라는 한마디가 있었다. 흔히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동해 쓰는 우리 사회는 정말로 ‘다른 것은 틀리다’고 낙인찍고 있는 것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기 무섭게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집어드는 ‘야한 남자 마광수’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