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학생들 행복지수가 낮아요. 사회 돌아가는게 각박해서 그런지 불안해하고 초조해합니다. 질그릇처럼 내던져도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데, 유리잔 같아요”
서울대 인문대 이남인 교수(50·학생부학장)는 서울대 입학할 정도로 공부도 잘하던 아이들이 지난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울대까지 와서 공부 잘하고 젊은데 그 자체가 즐거워야하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실제로 지난해 5월과 6월 잇따라 인문대 4학년 학생이 삶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서울대가 2006년 재학생 90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25.2%가 최근 1년간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개월간 자살 충동을 느낀 학생이 7.4%. 주요 우울장애를 겪었다는 학생 중 17.8%는 자살을 계획하거나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이처럼 외부에 알려진 불미스러운 사건 외에도 심리적으로 문제를 호소하는 학생들이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나 학교입장에서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수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체험한 것이죠. 학생들의 심리 문의가 학장회의에서도 자주 거론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하면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좋아진 경우도 많다. 따뜻하게 해주고 배려해주면 반드시 좋아진다”면서 ‘소셜 서포트(Social support)’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4개월간 인문대 사상 처음으로 외부 진단평가를 의뢰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인문대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처럼 학생들의 심리상담 문제 등 교육 문제에도 적극 대처하기로해 주목된다.
인문대는 이처럼 잇따른 사건과 갈수록 나약해지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5월 중 ‘행복키움센터(가칭)’를 오픈할 예정이다. 임상심리 전공 박사학위자 2명이 개별 심리상담을 맡고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성격 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단과대 차원에서 심리상담센터를 세우는 것은 학내에서 의대에 이어 두번째다.
이 교수는 센터설립의 목적을 한가지 더 들었다. “마음의 병에 대한 나쁜 편견들이 많아요.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누구나 걸리고 좋아질 수 있다’고 하거든요. 숨겨서 방치하면 독감처럼 폐렴이 되겠죠.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서울대가 이처럼 학생들의 심리상담실을 만들기는 최근의 일이다. 70-80년대와 비교해 아이들을 어려움 없이 과잉보호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비스 마인드를 재촉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요구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다.
이 교수는 이런 면에서 학생들도 시련을 겪을 필요도 있다고 했다. “특히 서울대 학생처럼 항상 최고를 자부하면서 자란 학생들의 경우, 서울대에 들어와 경쟁하면서 난생 처음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거든요.”
심리문제와 학업능력은 적지 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소견이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더 중요한게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자기 하나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인류 등 타인을 생각하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일이 더 중요했어요”
인문대는 이 때문에 상담센터와 함께 경력개발센터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심리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 중 대다수가 그 바탕에 학점과 취직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오는 8월까지인 학생부학장 임기 만료 후에도 센터를 지원할 계획이다.
학생들에게 조언의 한마디를 부탁했다. “행복하게 사는게 가장 중요해요. 운동은 필수로 하고, 세상 경험을 많이 하세요. 그 동안 입시준비로 자신만 생각했다면, 앞으로는 타인을 생각하고 실력을 쌓고 이를 통해 행복감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남인 교수는 = 서울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1981년)한 뒤 독일 부퍼탈대에서 철학박사(1990년)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4년여간 서울대와 서강대 등에서 시간강사를 거쳐 1995년부터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교내에서는 인문대 학생부학장을 맡아 오는 8월까지가 임기다.
독일 부퍼탈대 최우수박사학위논문상(1992년), 철학연구회 논문상(1994년), 대한민국 학술원상(2005년) 등을 수상했으며, 박사학위 논문 발표 후 현상학 분야 학계의 주목을 받은 후 세계 철학계 현상학 분야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있다. 박사학위논문상은 특히 철학과와 외국인으로는 처음 선정됐다.
‘콘티넨탈 필라소피 리뷰’(네덜란드) 등 10여개의 국제 저널 편집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지난 1999년에는 미국 학회에서 매년 1 명을 선정하는 ‘아론 거비치 기념강좌’에 초청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저서 중 ‘에드문트 후설의 본능의 현상학(1993)’은 세계 현상학계의 지난 100년간 ‘주목할만한 책들’ 300권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