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기술사업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SCI 논문’ 만큼 ‘특허’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사업화 역량 제고위해 변리사 채용=한양대 산학협력단은 2006년부터 기술사업화에 주력했다. IT·NT·BT 등 분야별 전문 변리사를 고용해 특허 출원·등록을 장려한 것. 그 결과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기술이전 수익으로 97억3600만원을 거둬들였다. 장기술 산학협력팀장은 “분야별 변리사를 채용하고, 시장성 있는 기술의 특허 출원·등록을 장려한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양대의 2006년 기술이전 실적은 4억2200만원으로 전체 대학 가운데 5위를 기록한 이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7년 7억6000만원(4위) △2008년 66억1400만원(1위) △2009년 19억4000만원(2위)을 기록했다. 국내 5위권 수준에서 2008년부터 서울대와 기술이전 실적 1·2위를 다투는 대학이 된 것이다.
장 팀장은 “올해 기술이전 실적은 현재까지 16억7000만원을 넘어섰다”며 “연말까지 가면 총 30억원 가량 기술이전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올해 역시 기술이전 실적에서 서울대와 수위 다툼을 벌일 것이란 예측이다.
기술사업화에 관심을 가진 대학은 한양대만이 아니다. 기술사업화란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거나 생산과정에 적용, 제품·서비스를 생산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기술사업화의 핵심 요소는 특허·실용신안 등 지식재산권이다. 대학이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술이전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자본금’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지난 1월부터 심사를 통해 특허 출원·등록을 지원하고 있다. 산학협력단 송지광 운영기획실장은 “교수들의 연구 결과물을 심사한 뒤 시장성이나 특허등록 가능성이 있는 연구 성과를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며 “시장성 있는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많이 보유할수록 기술이전 실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서울대도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변리사 3명을 산학협력단 소속으로 고용했다. 지난 2008년을 제외하고는 2006년부터 줄곧 기술이전 실적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서울대이지만, 잠재된 우수 연구성과를 찾기 위해 변리사까지 채용한 것이다.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변리사 3명을 채용, 교수들이 보유한 연구결과물에 대한 시장성이나 특허 등록 가능성 여부에 대해 상담해주고 있다”며 “향후 좀더 많은 기술이전 실적을 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잠재돼 있는 좋은 기술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수업적평가에 특허실적 반영=KAIST는 서남표 총장 취임 이후 ‘연구의 질’을 강조하면서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왔다. 특히 교수업적평가에서 ‘논문’과 ‘특허’의 무게중심을 유연성 있게 설정한 것이 기술사업화 제고에 도움을 줬다.
산학협력단 이인희 팀장은 “교수평가에서 논문 게재가 중요한 기초학문 분야는 논문실적에 대한 평가비중을 높이고, 특허가 중요한 응용학문분야는 특허 비중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3월 특허 등 지식재산권에 관심을 갖고 ‘연구자를 위한 지식재산·기술이전 메뉴얼’을 제작, 온라인으로 배포하고 있다. 앞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IT·BT 분야 변리사를 각각 2명 채용하고, 기술이전 전담직원을 기존 5명에서 7명으로 확대했다.
김영근 산학협력단장은 메뉴얼을 통해 “지난 2004년부터 전담조직을 설치해 기업에 기술이전을 해오고 있다”며 “지식재산 관련 △워크숍 개최 △교과목 운영 △연구실 컨설팅 △지식관리시스템 구축 등 기술사업화 역량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학이 특허의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특허 보다는 SCI 논문 게재를 더 독려해 오던 데서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김상식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국내 대학들은 세계대학 순위를 올리는 데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SCI논문을 중시했다”라며 “그러나 대학평가에서 어느 정도 위상을 강화한 대학들이 최근엔 수익창출에 관심을 가지면서 특허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등록금 인상은 사회적 반발 때문에 한계가 있고, 기부금을 통한 재정확충도 안정적 수입원은 아니다. 대학으로서는 연구·개발한 지식재산권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게 가장 ‘깔금한’ 방법이다. 기술사업화를 통한 수익은 다시 대학의 연구에 재투자되기 때문에 연구역량 제고에도 큰 힘이 된다. 제고된 연구력이 다시 기술이전 실적과 수익을 낳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최근 대학가에 “SCI 논문이 중요한 만큼 특허 출원·등록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논문 발표 전 특허 출원부터”=논문은 연구성과를 공개해 이를 공유·확산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이에 반해 특허는 연구·개발된 기술에 배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재산권 행사를 가능케 한다.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갖는 만큼 특허 등록을 요하는 기술과 논문 발표가 필요한 연구성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들은 향후 시장성이 밝은 기술에 대해선 논문 발표 이전에 필히 특허부터 출원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KAIST 이인희 팀장은 “특허 출원일을 기준으로 동일한 내용이 일반에 공개될 경우 신규성이 상실된다”며 “시장성이 있는 좋은 기술일 경우 논문 발표 전 반드시 특허출원을 해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특허 등록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신규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논문발표’ 보단 ‘특허출원’이 먼저라는 것이다.
대학가의 이런 변화엔 정부의 역할도 한 몫 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가 지난 2006년부터 시행한 ‘기술이전전담조직(TLOㆍTechnology Licensing Office)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TLO사업은 대학의 특허권 보유와 이를 통한 기술이전·사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시행됐다. 사업에 선정된 18개 대학과 10개 연구소는 연간 약 9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으며, 기술사업화 전담부서를 신설하거나 확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들 연구기관의 기술이전 실적은 눈에 띄게 늘었다. TLO 지원 사업이 시작된 2006년 당시 전체 공공 연구기관의 기술이전 건수는 총 2073건, 금액 기준으로는 820억300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18개 대학연구소와 10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기술이전 건수는 전체의 31.7%인 657건에 달했다. 기술이전료 수입도 전체의 25.9%인 212억원을 거둬들였다.
개별 대학을 살펴봐도 2006년을 기점으로 기술이전 실적이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대는 2006년 19건 3억6500만원이던 기술이전 건수가 △2007년 32건(4억4200만원) △2008년 51건(10억3900만원) △2009년 55건(15억원)으로 늘었다.
■“기술사업화 활성화 위해 TLO 예산 늘려야”=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의 기술사업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술이전료 수입도 미국의 선진 대학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메사추세스공과대학(MIT)은 지난 2008년 한해 동안 978억원의 기술이전 수익을 올렸다. 같은 해 스탠퍼드대는 688억, 하버드대는 231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대학의 ‘연구비 대비 기술이전수익’도 해외 선진대학에 비해 현저히 낮다. 국내 대학은 대부분 1% 미만인 데 비해 △스탠퍼드 9.0% △MIT 6.7% △하버드 3.2%로 3~9배 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우리보다 앞서 ‘기술사업화’에 눈을 뜬 해외 선진대학과 국내 대학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다만 전체 연구개발(R&D) 예산 중 기술사업화에 투입되는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다. 해외 선진국은 R&D 예산 총액의 2~3%를 기술사업화 비용으로 책정하고 있다. 연구과제에 따라 그 비중이 5%에 육박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R&D 예산(10조원)에서 기술사업화 비용이 1% 이하다.
‘기술사업화’를 확대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 오던 TLO지원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 사립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TLO 지원사업은 비용대비 효과가 뛰어난 사업”이라며 “사업 예산을 늘려 선정 대학을 확대하고, 대학 전반에 기술사업화를 촉진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TLO 지원 사업은 올해로 1단계 사업이 종료된다. 조만간 5년 동안의 실적평가를 통해 2단계 사업 선정대학을 가릴 전망이다. 다행히 교과부도 기술사업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2단계에선 ‘후발 대학’에도 기회를 줄 전망이다.
교과부 학연산지원과 김학승 사무관은 “1단계 사업에선 연구 역량·여건 위주로 평가해 지원 대학들을 선정했다”며 “2단계에선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담 인력이 부족하거나 재정이 어려운 대학을 발굴, 이들에게도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특허 ‘실적’ 보다 ‘질’ 더 따져야
국책연구소·대학 보유 특허 중 70% ‘휴면 특허’
대학들도 심사 강화, 시장성 있는 기술만 지원
대학에서 특허가 중시되고 있지만, 기술이전이나 사업화되지 못하는 특허는 골칫거리다. 이런 특허를 일컫어 ‘휴면 특허’라 한다. 기술이전으로 수익은 올리지 못하고 유지비용만 까먹는 애물단지인 셈이다.
김상식 고려대 교수는 “100개 특허를 등록했다 해도 수익과 연결되는 비율은 5% 정도”라며 “휴면특허를 유지하는 것도 대학에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책 연구소와 대학이 보유한 특허 10개 가운데 7개 이상이 산업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종혁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특허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 150여곳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 3만1900여 건 가운데 71%인 2만2000여 건이 휴면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특허 실적만큼 특허의 질을 신경 쓰는 게 최근의 대학가 분위기다. 이봉진 서울대 연구부처장은 “해외 특허의 경우 등록비와 특허 유지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지원하기 전에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도 마찬가지다. 장기술 산학협력팀장은 “특허 실적보다 해당 기술의 시장성을 중시한다”며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시장 전망이 밝지 않으면 특허 등록·유지비용을 지원하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특허 출원·등록비를 지원하기에 앞서 심사를 통해 해당 연구 성과를 S·A·B·C 등급으로 나눈다. S·A등급은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해외 특허등록비 등을 지원하지만, D등급은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킨다. 또 5년 단위로 보유 특허를 평가해 더 이상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특허 승계를 포기한다. 해당 기술을 그대로 도태시키거나 이를 발명한 교수에게 이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