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일본은 대학 구조조정 어떻게 하나?
국립대 법인화는 장기간 신중히 검토
부실사학엔 체계적인 퇴출 통로 마련
우리나라의 보다 발전적인 대학 구조조정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선 해외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보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대학 서열화로 인한 치열한 입시 경쟁 △사립대 중심의 고등교육 구조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교육 제도·문화를 갖고 있으면서, 1980년대 이미 대학 구조조정을 시작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일본이 수년전부터 시행한 국립대 법인화, 부실사학 퇴출 등의 정책은 최근 우리나라가 모색하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국립대 법인화, 장기간 신중한 검토 후 시행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연구원(KEDI)이 발표한 ‘고등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 구조조정 방안 연구’(책임연구자 유현숙), <비교교육연구>(제19권 제2호)에 게재된 ‘일본의 사립대학 재생을 위한 구조개혁’(연구자 김미란) 등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1987년. 이후 14년여간 일본은 국립대 법인화에 관한 의견 수렴·준비과정을 거친 뒤 2001년 6월 ‘국립대학 구조개혁 방침’을 발표·실행하기에 이른다.
당시 일본이 내놓은 국립대 구조개혁 방침은 △재편·통합을 통한 국립대 수 감축 △상위 30위권 대학(사립대 포함) 중점 육성 △국립대 독립 행정 법인화 및 민간 경영 수법 도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방침에 의거, 일본 정부는 우선 전국 48개 교원양성 대학 중 입학 정원이 100명 미만인 16개 대학을 통폐합했다. 이어 2003년 7월에는 ‘국립대 법인화법’을 수립, 일본 내 89개 국립대를 국립대 법인으로 이행하고 15개 대학공동 이용기관을 4개로 통폐합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과거 국립학교 설치법에 의한 171개 기관을 97개 기관으로 축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법인화 후에는 △대학 운영의 자율권 확보 △총장 재량권 확대 △외부 인사 운영 참여 제도화 △비공무원형의 탄력적 인사시스템 수립 등을 통해 국립대에 실질적인 자율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실시된 일본 국립대 이사·학장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상당수가 “법인화가 대학의 개성화, 자율성 향상, 경쟁력 강화, 지역발전 기여 등에 매우 큰 효과를 가져다줬다”고 답했는데, 이는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가 어느 정도 성공적임을 증명한다.
유현숙 KEDI 본부장은 논문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상황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조하는 법인화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며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검토됐다는 점을 기억하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에는 상당한 부작용도 뒤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등록금이 인상돼 교육 기회 불평등이 확대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대학이 각종 수익사업에 뛰어들면서 교육·연구 등 본연의 기능이 약화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더불어 국립대의 재편·통합으로 대학 간 경쟁이 치열해져 서열화가 일어나고 학벌주의·학력주의가 심화됐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현숙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대학 구조개혁 방안은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며 “우리보다 앞서 법인화를 실행한 일본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정확히 직시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립대 법인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시행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부실사학엔 체계적 퇴출 경로 마련
대학의 운영·유지가 어려운 사립대들을 위해선 체계적인 퇴출 경로를 마련해놨다. 또 자발적 퇴출을 장려할 뿐 아니라, 이를 방지하기 위한 행·재정 지원, 경영상담 등도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립대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인식되는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선정·발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오늘날 일본 사립대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우리나라와도 상당히 비슷하다. 특히 일본도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어려움이 큰데, 사립대의 경우 입학 정원을 충원하지 못한 대학·전문대학이 1995년 4.4%·11.8%에서 2002년 28.3%·48%, 2008년 47.1%·67.5%로 크게 늘었다. 또 각 대학법인의 투명성·공정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데다, 적자 경영인 학교들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같은 사립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사립학교법 개정 △재정 지원 △경영개선 지원 등을 벌이고 있다. 특히 경영 개선을 위해선 각 사립대의 운영 상황을 정상, 경영곤란, 자력재생곤란, 파탄상태 등 4단계로 분류해 맞춤형 지원을 벌이고 있다. 또 정부 차원에서 각 학교법인의 관리·운영·재무 상황 등을 실사하는 ‘학교운영조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법인 경영지도실’을 설치해 경영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에도 경영 개선이 불가해 퇴출 대학으로 판단될 경우 △파산수속 △사적정리(정산형) △사적정리(재생형) △민사재생수속 등 4개 유형 중 적합한 한 개를 찾아 자율적으로 문을 닫을 수 있게 유도한다. 김미란 KEDI 연구위원은 “일본은 한 개 사립대에 대한 퇴출 결정을 내리는 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회생이 불가할 경우 사립대 스스로 자율적으로 퇴출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길을 마련해놨다”며 “퇴출 과정에서도 금융·법률·개인재산보호 등 필요한 모든 분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없어질 수 있을 때까지 수차례의 지원을 지속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일본 정부는 퇴출 대학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한 대학이 퇴출 과정을 밟게 되면 해당 학교 학생들의 전학을 장려하고, 근린교의 지원을 받아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한다. 대학이 저지른 부실 경영의 책임이 학생들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선정·발표에는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대학이 경영을 잘못했는데, 학생들이 책임을 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사립대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적인 측면도 고려해야하는 게 맞지만,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의 학습권·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한 뒤 자발적인 퇴출을 촉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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