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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연구 공유 국가경쟁력 강화 지름길
이병화(신라대 총장)
산학협동은 기업, 대학의 공존을 위한 지상과제
"일방적 손해보고 있다." 기업의 피해의식 탈피해야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한 21세기 들어 지구촌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지식정보화를 키워드로 한 디지털시대에는 현대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가 예견했던 대로 다자간 협력방식에 의한 지식경영을 매개로 사회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대학과 기업도 지식기반사회의 출현이라는 변화한 시대환경 속에서 각자의 강점을 공유하고 약점은 상대를 통해 보완해 나가는 상호 유기적 관계를 축으로 무한경쟁의 높은 파고를 돌파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산·학협동을 통한 지식경영은 더 이상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절박한 생존전략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산·학협동은 실리콘밸리 신화의 모태

글로벌경제의 맹주 미국이 구가해왔던 장기호황의 진원지는 당연히 실리콘밸리를 첫손꼽는다. 또 이러한 실리콘밸리를 탄생시킨 주역은 스탠포드대학이었다.

산·학협동의 메카인 이 곳은 지난 1937년 당시 스탠포드대학의 터먼 교수가 졸업 후 직장을 마련하지 못해 타지로 떠나는 제자들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문하생이었던 휴렛과 팩커드에게 모교 인근에서 창업할 것을 권유, 실리콘밸리의 원조기업인 '휴렛 팩커드'가 탄생한 다음 성공을 거두자 다른 기업들도 앞다투어 입주대열에 오른 뒤 세월의 풍화작용과 더불어 오늘날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이 곳에는 약 7천여개의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대학과 기업의 연계를 통한 연구개발과 제품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소재 기업 중 스탠포드대학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만도 지난 98년에 무려 1백50여개로 집계됐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의 헤리어트 와트대학과 일본의 도쿄대학 등 세계 유수 대학들도 산·학협동을 기초로 국가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에 효자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IT 강국을 추구하고 나선 중국과 인도도 산·학협동의 열풍에선 예외가 아니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일찍이 산업기술개발을 위한 산·학협동연구의 중요성을 절감, 다양한 협동체제를 구축해왔다. 여기에는 각 국 정부의 국가기술력 향상을 위한 투자규모 확대와 산·학협동기구의 설치 및 법 제정 등도 한몫 거들었다.

'제 2의 한강의 기적' 실현할 황금어장

무한경쟁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생존대열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국가경쟁력 강화 외엔 다른 대안이 없고 이는 공동체 구성원간의 두뇌 네트워크 화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산·학협동은 두뇌 네트워크 화의 '실천적 정화(精華)'로 부를만 하다. 지식정보화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기술력 제고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학협동이 활발하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대학들이 학내에 산·학협동 관련 연구기관을 설립해 기업과의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시대적 조류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사회의 다변화에 따라 연구개발 과제의 대형화와 다양화, 국제화, 전문화는 일반적 추세이다. 그렇지만 연구개발에는 자금과 인력의 확대가 필요할 뿐 아니라 개발 목표 설정이 힘들고 성공 가능성마저 불투명한 위험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특성때문에 기업이나 대학 등이 '독불장군'이 돼 연구과제를 수행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산·학협동은 바로 이 같은 제약조건들을 완화하고 상호보완적 관계설정을 통해 기술력 제고와 경쟁력 강화라는 대어를 기대할 수 있는 해법이 아닌가 한다.

국내 산·학협동의 현주소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국내 연구인력의 54.3%가 기업, 35.3%가 대학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인력의 질적인 면에선 박사 연구인력의 75.7%가 대학에 있고 기업의 보유자원은 10.8%에 그쳤다. 이 통계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연구인력 60% 이상이 학사 수준의 연구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인재 풀을 감안할 때 지식정보화사회를 선도할 고부가가치 기술과 제품을 창출해 내기 위해선 고도의 연구능력을 지니고 있는 대학과 질적인 면에서 차위에 놓인 기업의 합종연횡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지식경영 백화점'으로써의 산·학협동

산·학협동은 크게 교수의 기업 자문과 학생의 산업체 위탁교육, 기업의 대학 연구비 지원과 연구결과의 활용, 기업과 대학의 공동 연구프로젝트 수행, 정부 주도의 국책 프로젝트 공동 참여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산·학협동의 패턴을 볼 때 일본은 기업중심으로 산학관계가 이뤄진 반면 유럽은 대학중심의 산학관계 모델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학관계는 일본형에 가깝다. 하지만 학문의식이 강하다는 점에서 절충형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내의 대표적인 산·학(연구소 포함) 협력 프로그램으론 산업자원부가 주관한 테크노파크와 기술혁신센터, 기술인력양성사업과 중소기업청 주관의 창업보육센터 설립과 기술지도대학 선정, 산·학·연 컨소시엄, 과학기술부 주관의 지역협력연구센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사업들은 지역산업의 특성화 방향과 연계해 추진돼 왔기 때문에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론엔 합의, 각론엔 동상이몽

기업과 대학은 산·학협동 과정에서 서로에게 거는 기대와 주문이 다르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개선돼 가고 있는 추세이지만 산·학협동의 여명기 때만해도 기업과 산업체간에는 상호 불신감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은 기업과 대학 상호간의 산·학협동을 바라보는 시각편차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기업은 대학이 지원만 기대하고 생산현장에 필요한 기술개발이나 기초연구를 원활하게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받기만 할 뿐 주는 것이 적어 '기브 앤 테이크의 룰'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불평이다.

지난 98년 한 대학연구팀이 국내 최고경영자 25명을 인터뷰했을 때도 이런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당시 응답자들은 대학의 연구능력 및 연구체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응용연구와 상업화연구에 필요한 대학의 '현장감각 결여'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렸다.

대학은 이런 기업의 비판에 대해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상아탑의 몫이지만 그물을 쳐 어획을 올리는 일은 당연히 기업의 임무'라며 반론을 폈다.

다시 말해 기업은 대학의 부화장에서 품고 있는 황금알이 채 성숙되기도 전에 거위의 산란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단기성과와 자기이익의 대차대조표에 따라 성급하게 메스를 들려한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동상이몽은 산학협동의 궁극적 지향점

산·학협동의 발전적 뱡향 모색을 위해선 기업과 대학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은 대학에 대해 일방적 손해를 보고 있다는 기존의 피해의식에서 탈피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최근 국내의 한 신문은 기업이 신규사원을 채용해 별도의 직무교육을 거치지 않으면 당장 현업 투입이 불가능하다는 산업현장의 여론을 반영, 대학교육의 실용성에 의문부호를 제기하는 비판기사를 실었다.

기업의 이런 불만 속에는 산·학협동을 통한 인력양성의 효용성마저 신뢰할 수 없다는 시각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대학 입장에서 볼 때 기업이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위한 공간 제공에 인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나마 올 여름 방학 때부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학생들의 현장실습인 이른바 '중활(中活)'이 산발적으로나마 활기를 띠고 있지만 대학에서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주선할 때 가장 애로를 겪는 대목이 바로 적극적인 수용자세를 보여주는 기업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학으로부터 원활하게 공급받으려면 보다 과감한 투자를 통한 '맞춤형 교육'에 능동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업의 교육투자는 설비투자에 비해 세 배의 높은 효율을 보장한다"는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대학은 투자자인 기업에 아무런 이득을 제공하지 못하는 '돈 먹는 하마'나 '밑 빠진 독'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산학협동 연구 내용은 '일급비밀'

대학 측에서 볼 때 산·학협동은 현실적으로 고충이 크다. 대학의 연구는 그 성격상 공개성이 원칙이다. 그래야만 토론과 논쟁의 과정을 거쳐 연구의 원숙도를 높여갈 수 있다. 그러나 산·학협동연구는 그 결과물의 상품성과 부가가치성 때문에 기밀을 요하는 경우가 태반이 넘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학협동 형태의 연구는 '대외비'의 꼬리표를 달고 원활한 학문적 논의를 통한 연구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려는 대학의 발목을 붙들어맬 때가 허다하다.

최근 들어 각 대학이 자체 연구역량에 자신감을 얻어 기업과의 '별거'를 선언, 자체적으로 기업설립과 제품생산을 본격화하고 나선 것은 상아탑이 더 이상 수혜자의 처지에서 기업의 '수렴청정'과 눈총을 받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기업 현실과 대학의 역할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신라대는 산학협동연구원을 설립, 기업과의 다양한 연구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과 연구를 공유하고 있다.

올해 4월 부산시가 발표한 '2000년도 산·학·연 컨소시엄 사업 만족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라대는 이 사업에 참여한 1백54개 업체들로부터 1백점 만점에 91.7%를 따내 부산지역 9개 대학 중 1위를 차지해 연구역량을 과시했다.

신라대 산학협동연구원이 국내의 한 유명 화장품회사와 공동 연구를 통해 신제품을 개발, 지난 9월 제2회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일은 지역 대학과 기업이 추구해야 할 산·학협동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올 하반기 부산의 한 일간신문엔 부산지역의 7백여개 IT(정보기술) 업체 중 70% 이상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라는 우울한 뉴스가 실렸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지역대학과 이들 기업들이 보다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공존을 모색했더라면 IT 산업의 거품을 좀더 효율적으로 걷어내고 활로를 모색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점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정식단' 탈피 다양화 필요

필자는 현재 이공계나 과학기술분야 위주로 추진되고 있는 산·학협동을 인문·사회과학 등 다른 제 분야에까지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과학기술과 순수학문은 인류사회의 발전을 이끌어온 두 동력(動力)이다.

디지털문화가 사회의 중심 축으로 등장하면서 과학기술은 산업발전의 기대주로 주목을 끌고 있는 반면 순수학문은 '채란성 없는 거위' 마냥 냉대 받는 처지에 몰렸다. 기업 입장에선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시켜줄 과학기술에 대한 편애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도 실사구시란 모토 아래 정보기술 관련 첨단 학문은 총애하는 반면 순수학문은 취업률 감소 등을 이유로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를 이끌어갈 핵심 역량인 '지식'은 과학기술 못지 않게 인간정신에 대한 보다 심오한 관심과 연구가 병행될 때 생산성이 배가 될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이공계와 과학기술분야에만 국한되다시피 한 산·학협동의 범주를 인문사회과학을 비롯한 여타 학문영역으로 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잉여 자원'의 분산과 분배가 아니라 기업 입장에선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에 필요한 정신문화를 고양시키고 대학의 처지에선 위기국면에 몰린 순수학문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상호 동반자 입장에서 공존모색 필요

건전한 산·학협동을 위해선 기업과 대학의 인식전환을 통한 호혜정신의 확립이 필요하다.

기업은 날로 격화되고 있는 국제경쟁무대에서 독자적인 역량만으론 생존이 어렵다는 한계현실을 직시, 대학을 동반자로 인식하고 각종 지원 확대와 협력 강화를 통해 대학이 보유한 연구인력과 역량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려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대학 역시 기업으로부터의 시혜만 기대하던 종전의 입장에서 탈피, 기업의 경영마인드를 존중해 그들의 기대와 주문에 보다 기민하게 대응해 나가려는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양자가 미래지향적 시각에 입각해 이공계와 과학기술분야에만 머물러 있는 산·학협동을 여타 학문영역으로 까지 확대할 때 부가가치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과 대학은 '산·학협동을 통한 기술력 제고와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공안(公案)을 함께 참고해야 할 도반(道伴)이요 함께 굴러가야 할 두 바퀴이다.

그 것은 바로 현대 경영학의 비조(鼻祖) 피터 드러커가 21세기 선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상현 기자 (news@unn.net) | 입력 : 01-11-12 오후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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