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대학 인문계열 학과를 졸업한 한재희씨(27). 90학번인 그는 대학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맏형이다. 올해는 꼭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서지만 그런 그인 만큼 별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침 7시. 예전 시간으론 '새벽'인 시간에 한씨는 벌써 집을 +나선다. 이 생활도 1년이 넘었다. 유난히도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무색하리만큼 성큼 다가온 가을 아침 기운이 한시 마음을 다급하게 한다.
1년 동안 변하지 않은 도서관 4층의 고정석에 책 하나하나를 꽂으며 긴 +호흡을 내쉰다. 벌써 낯익어 버린 앞, 옆자리의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 쪽 가슴이 허전하다. '혹시 입사시험에 합격해 이 +지겨운 생활을 청산한 건 아닐까'.
점심 먹고 커피 한잔 뽑아들고 학생회관의 취업정보실 게시판으로 +향한다. 한씨는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직종을 택할 심산이다. 하지만 게시판에는 자신이 갈 만한 이렇다할 직장이 나와 있질 않다. 학점이 썩 좋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 그의 복잡한 심경은 대인기피증을 낳았다. 혹 도서관이나 식당 등에서 과나 동아리 후배들을 만날까봐 잔뜩 움츠러든 상태다. 가능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차단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침 일직 도서관에 들어가고 후배들이 잘 가는 곳은 가급적 피한다.
"기업들이 취업재수생들을 기피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어요. 취업재수하는 것도 서러운데..."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한씨의 얼굴은 이미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