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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식물학자 되고 싶어요."
겨울이 오기도 전에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준비는 항상 되어 있다. 언제라도 배낭만 메고 나서면 된다”라고 말하는 장대경 중앙대 관리처장의 눈빛이 유난히 빛났다.

장 처장은 야생화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다. 지난 92년부터 그는 학교가 쉬는 날이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전국의 산을 찾았다. 야생화의 고운 자태를 렌즈에 담기 위해서다. 98년부터는 이렇게 찍은 야생화 사진들을 ‘장대경의 야생화 사진’이란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공유해왔다.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든 2백여 종의 야생화가 특유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뿜어내던 사이트였다.

장 처장의 고등학교 때 꿈은 식물분류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중앙대 생물학과에 진학했고, 졸업도 수석으로 했다. “당시만 해도 장학금 제도가 별로 없었다. 과 1등을 하면 등록금 반을 학교에서 대줬는데, 1학년 1학기 때 1등을 해서 2학기 때 1만6천5백원 가운데 8천2백50원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4학년 때는 3만2천원이었는데 1만6천원을 받았다. 전차 삯이 1원50전할 때였다.”

대학 2년 때 찾아온 아버지의 사업 부도는 소년의 장래를 바꿔놓았다. 조교 생활(72~75년)을 거쳐 그 해에 모교 직원으로 취직했다. 산을 다닌 것은 조교 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였다. 72년 전역 후 YMCA 야학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다. 그 때 야학 선생들 모임인 ‘우암회’ 산하에 있던 등산클럽에 가입하면서 산을 찾게 됐다.

야생화 사진은 92년부터 찍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다면 식물분류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도 늘 머릿속에 있다. 70년대부터 산에 다녔기 때문에 거의 안 다녀본 산이 없을 정도였는데, 산에만 다니지 말고 꽃 사진을 찍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학원에 등록, 3개월 동안 배운 뒤 본격적으로 야생화 찍기에 나섰다. 장 처장은 “그때는 빨리 토요일이 왔으면 하는 기대감에 살았던 것 같다. 금요일만 되면 설레곤 했다”라고 말했다.

▲ 복주머니 난꽃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 아니라 찾기 힘들고 보존 가치가 높은 꽃들을 고집하다 보니 허탕 칠 때도 많았다. 광덕산 금강초롱은 4년을 기다린 끝에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9월 첫째 토요일쯤에 제일 예쁜데, 토요일에 갔더니 꽃이 조금 덜 펴 있었다. 수요일쯤 가면 완전히 필 것 같은데 직장 때문에 못 가고, 토요일에 가면 조금 져 버리고. 4년 만에 만개한 금강초롱을 찍을 수 있었다.” 한맥산에서 못 찾고, 정선 가리왕산까지 가서 딱 한 송이를 찍은 ‘복주머니 난꽃’도 기억에 남는 야생화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7월 관리처장으로 승진하면서 그 좋아하던 야생화 찍기도 잠깐 멈춤이 됐다. 학교 대·소사를 챙기다 보니 주말에도 짬 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가끔 유명산 야생화단지를 찾아 사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봄에는 사이트가 해킹 당하는 일도 겪었다. 초등학생들 방학 숙제용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10만 가까운 방문객을 보유한 사이트였다. 사진뿐 아니라 설명도 꼼꼼하게 해 놓은 노력 덕분이다.

“언제부턴가 음란사이트 광고나 사진을 지우는 게 일이었다. 초등학생들도 많이 들어오는 곳인데 이렇게 해서 밥 먹고 살아야겠느냐는 경고성 메일을 보냈더니 아예 사이트를 해킹해 버렸다. 전문가 말로는 아예 복구가 안 된다고 한다. 요즘도 학부모들로부터 ‘왜 복구 안 하느냐’는 항의성(?) 전화를 가끔 받는다”라고 장 처장은 말했다.

장 처장은 “이 기회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라고 힘을 냈다. 내년 8월 정년퇴직을 하면 완전히 다른 사이트를 다시 개설하겠다는 것이다. 귀하고 예쁜 야생화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도 다 올릴 생각이라고 한다. 계절별로 볼 수 있는 꽃, 약초 50선 등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카메라도 다시 처음의 아날로그 카메라로 돌아간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면서 처박아뒀던 ‘니콘 F4E’와 ‘하셀블레이드 503CXi’로 찍을 계획이다. “디지털이 편하긴 한데 한장 한장에 들어가는 정성과 혼, 현상하기 전까지의 기대감은 아날로그를 못 따르는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이젠 눈 감고도 할 수 있다’는 포토샵 책을 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야생화 촬영법’ ‘한국식물검색도감’ 같은 책들도 다시 펼쳐들었다. “내년 8월이 정년퇴직이니까 내년 봄부터는 조금 시간이 나지 않겠어요. 빨리 내년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권형진 기자 (news@unn.net) | 입력 : 05-11-12 오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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