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중복 게재 등 논문 관련 의혹들로 퇴임 위기에 몰린 김병준 교육부총리에 대한 사실상의 ‘청문회’가 1일 국회 교육위원회(위원장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에서 열렸다.
김 부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자리에 연연해서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절박한 심정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며 “전문가들에 의해 판단돼야 할 문제가 사건 담당 사회부 기자들에 의해 제대로 규명할 기회도 없이 여기까지 몰려온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는 전체회의 마지막 무렵에 “아직 (개인으로서, 부총리로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김 부총리는 이날 자신에게 제기된 다섯 가지 의혹 가운데 BK21사업 최종 보고서에서 한 편의 논문을 두 건의 실적으로 보고한 사실에 대해서만 인정했다. 김 부총리는 “작성과정에서 실무자 실수로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제 책임”이라면서도 “이런 실수가 연구업적 부풀리기나 연구비를 더 받기 위해서였다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연구실적 부풀리기 의혹은 부인했다.
또한 제자논문 표절, 논문 중복 게재, 연구비 중복 수령, 성북구청 연구용역 관련 부적절한 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명백한 오보’이거나 ‘잘못된 지적’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야당 의원들은 성북구청 연구용역을 둘러싼 의혹 등을 집중 추궁하며 김 부총리의 사퇴를 압박했지만 칼끝이 그리 날카롭지는 못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이상은 끄집어내지 못한 채 ‘도덕성’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의혹의 핵심은 도덕성 문제라고 본다. 법리적인 문제로 흐르면 진정한 국민의 뜻을 담지 못한다고 본다”며 성북구청 연구용역을 둘러싼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같은 당 김영숙 의원 역시 “구청장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대가로 박사학위 논문을 통과시켜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여러 가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했고, 정문헌 의원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지금 사퇴해서 대한민국 교육 백년대계에 공헌할 용단은 없는가”라고 압박했다.
주호영 의원은 “교육부총리는 윤리적으로 최고의 사람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의혹이 부총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사퇴를 종용했다. 주 의원은 “장관은 정무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지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혹 억울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도 “지금이라도 사퇴하고 물러나야 한다. 교육 관련 현안이 많은데 더 이상 지체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 방기이다”라며 “책임지고 사퇴할 의향은 없느냐”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도 인사청문회에서 김 부총리를 일방적으로 감싸던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봉주 의원만이 “교수 출신 한나라당 일부 의원도 논문 중복 게재, 연구비 중복 수령 등의 사례가 발견됐다”며 김 부총리를 적극 옹호했다. 정 의원은 “학술진흥재단에 제출된 BK21보고서를 분석해 본 결과 대부분 중복 게재가 발견됐고, 다른 대학에 이런 사례가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여당 의원들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차분하게 질문하면서도 은근히 사퇴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였다.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등이 사퇴 촉구 성명서를 낸 것을 예로 들며 “교육개혁을 이끌어가야 할 처지에서 기댈 언덕이 무너져버렸다고 생각한다. 지고의 도덕성을 가져야 할 교육수장이 심각한 이미지 훼손과 도덕성에 흠집을 입었는데 제대로 교육개혁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고 물었다.
같은 당 이경숙 의원은 “지금 시대는 모든 부분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다. 한 번 쓴 내용을 다른 제목으로 게재하는 것은 도덕적 문제가 있다”며 “의혹에 대해 확실한 것은 없지만 교육수장으로서 요구하는 것과는 상당히 많은 온도차가 있다”고 추궁했다.
이은영 의원은 “국민 관심의 초점은 불법행위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교육부총리 일을 해나갈 사람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편향된 한두 단체가 아닌 많은 교육·시민단체가 사퇴 의견을 내는 것을 보니 교육부 수장으로서뿐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신뢰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부총리로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물러나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민병두 의원은 BK21보고서에 연구실적을 중복 게재한 새로운 사실을 끄집어내며 김 부총리를 압박했다.
김 부총리는 교육위 전체회의가 끝난 후 “표절 문제의 진실을 못 밝혀 아쉽다”면서도 “사퇴는 무슨 사퇴냐.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리에 연연해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라고 말해 ‘자진사퇴론’을 일축했다.
당초 교육위 회의를 지켜본 뒤 입장 발표를 곧바로 내겠다던 한명숙 총리는 “각계 여론을 수렴해 대통령께 건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여기에 청와대는 논평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해석에 따라서는 김 부총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교육부는 네티즌의 반응을 체크하는 등 이날 전체회의를 계기로 그동안 사퇴로 흐르던 국민 여론에 변화기 있을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이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최종 결과야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아쉬움도 있다지만 그간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직접 밝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당 내에서는 학자로서 명예를 회복할 충분한 해명 기회를 준만큼 대통령과 당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강세에 고삐를 다잡았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바뀐 분위기를 의식해 "김병준과 청와대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자조섞인 한탄도 나오고 있다.
교육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여론의 변화가 사퇴 기류를 무마시킬 정도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도 “하루나 이틀 내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