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논란 재 점화 정부는 오는 17일 국무회의에서 ‘로스쿨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확정, 이달 안으로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지난 13일 차관회의 후 교육부 대학원개선팀 신인섭 사무관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초안을 잡고 교육부가 지난 6월 입법예고한 법률안에서 “내용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국법과대학학장협의회(회장 이철송 한양대 법대 학장) 등 법학계는 신발 끈을 다시 조여매고 있다. 지난 9월 로스쿨 설치법안과 변호사자격시험법안을 독자적으로 마련했다. 다음달 3일 국회 교육위원회 황우여 위원장(한나라당) 주최로 열리는 ‘바람직한 로스쿨 제도 도입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 정부안이 지닌 문제점과 대안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김민배 인하대 법대학장은 “의원입법 발의 등 독자 법안이 국회 입법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독자 법안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로스쿨 법안을 아예 폐지하고 변호사자격시험법만 바꾸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법학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역시 현 정부안에 담겨있는 독소조항이 수정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 ‘행동’의 수위 조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건국대 교수)은 “사법개혁을 위해 로스쿨 도입 운동을 해왔던 법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법안 통과 반대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
| ▲ 로스쿨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재 점화할 분위기다. 사진은 지난 3월 지방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가 '1도1로스쿨' 도입을 주장하는 기자회견 모습<한국대학신문 자료사진> |
◆핵심은 총 입학정원 제한 시민단체는 물론 좀체 나서지 않는 교수들까지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하는 것은 이 법안이 “로스쿨 도입 취지나 목적을 상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창록 건국대 교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법조계가 법조인 숫자를 통제하려 한다는 데 있다”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로스쿨은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과정은 통제하지만 입구나 출구를 제한하지는 않는다”며 “입구와 출구를 모두 통제하고 있는 정부안은 로스쿨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용상 부산외대 법대학장 역시 “로스쿨 입학정원과 설치대학을 제한하려는 발상은 입법을 통해 법조인 증원을 오히려 봉쇄하려는 법조직역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팀장은 “법조인 수를 최대한 통제하고자 하는 변호사 집단의 요구에 굴복해 전국에 세워질 로스쿨들의 전체 학생수, 각 로스쿨별 학생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변호사 숫자가 별로 확충되지 않는다”며 “국민들이 지금보다 편하게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데에 턱없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대학들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총 입학정원 제한은 각 대학을 로스쿨 유치를 위한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모는 주범이다. 법조계와 사개추위가 제시한 대로라면 로스쿨 총 입학정원은 1천2백명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개별 로스쿨 입학정원이 최대 1백50명인 점을 감안하면 98개 법학과(부) 중 8~10개만이 로스쿨을 유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용상 교수는 “정부안의 기준을 미국과 일본의 로스쿨에 적용하면 각각 90%, 60% 이상이 탈락할 만큼 설립기준이 엄격하다. 이에 더해 총 입학정원과 대학별 정원으로 인가를 제한하기 때문에 설사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탈락할 수밖에 없는, 마치 특허주의에 다름 아닌 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 9개 지방 국립대 총장으로 구성된 ‘거점국립대학 총장협의회’와 지방 유명사립대가 “로스쿨은 ‘1도 1로스쿨’의 원칙에 따라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국은 총 입학정원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부구욱 영산대 총장은 “지금까지 관행대로 로스쿨이 서울에만 집중되면 지방 균형 발전은 요원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라며 “일본처럼 설립자격을 갖춘 대학에 일정 정원을 주든지 아니면 국가 발전 차원에서 ‘1도 1로스쿨’의 안배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일세 강원대 법대학장도 “로스쿨의 균형적 배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및 로스쿨 입학정원의 대폭적 확대가 전제돼야 한다”며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적어도 3천명 이상으로, 로스쿨 총 입학정원은 3천5백명 이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명 동국대 교수는 “수도권 중상위권 대학 대부분은 넉넉지 못한 재정 여건과 대학 내 반대 여론과 씨름하면서 어렵게 설립인가요건을 갖추더라도 총 입학정원에 대한 통제와 로스쿨 인가의 지역안배로 인해 역차별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로스쿨 유치를 위한 대학간의 왜곡된 경쟁을 부추기는 총 입학정원에 대한 통제와 인가주의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유증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 로스쿨 도입을 둘러싼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상희 교수는 로스쿨로 전환하지 않는 대학의 법학과(부) 운영에 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개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쯤이면 경계선에 있는 대학들은 로스쿨을 위해 승부수를 띄우고, 로스쿨로 가기 어려운 군소 대학들은 방향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총 입학정원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정부가 꽁꽁 감춰놓고 있다 보니 모든 게 불투명한 상태에서 논란만 무성하다. 제도 개혁 차원에서 로스쿨을 추진한다면 탈락대학들의 법학과(부) 운영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법학계 시장 자체가 ‘죽어버릴 수 있는’ 위험은 더 심각한 문제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탈락대학들은 로스쿨 준비반이나 경찰·공무원 시험 대비반, 법무·세무사 등 법조유사직역으로 방향전환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 연구는 로스쿨에서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는 “로스쿨은 단순히 실무자 양성 기관이 아니라 법학교육기관이다. 미국의 예를 봐도 법학자 양성은 로스쿨에서 맡아야 하는데, 3년 기간에 기본적인 법률 소양은 물론 실무 교육에 전문교육까지 하려면 이것만으로도 부하가 많이 걸리는 게 사실”이라며 “로스쿨로 가게 됐을 때 ‘학자 양성’은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했다.
정만희 동아대 부총장은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방편에서 로스쿨이 도입돼야 한다”며 “이 같은 큰 그림 위에서 로스쿨의 인가 기준을 마련하고 운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