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8일 오전 퇴임강연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퇴임 강의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풀어놨다. FTA와 대학 문제 등에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밝혔다.
-퇴임강의를 했다. 감회가 어떤가.
"1989년 3월 6일 입학식이 끝나면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올해로 17년째인데, 첫 강의는 출소 후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 매우 힘들었다. 수감 당시와 상황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예전 강의할 때와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똑같더라. 옛날에 함께 했던 학생들과 같은 정서로 만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맡은 과목이 고전강독이어서 오래된 담론을 나누는 것이었기 때문에 생소함이나 부담감을 더는 데더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성공회대가 갖는 진보적 연구풍토, 개개인이 가진 면면들 때문에도 편히 지낼 수 있었던 점을 감사히 생각한다. 특히 감옥에서 오랜 기간 격리돼 있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동료 교수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고마웠다는 말을 다시한번 드린다. 학생들도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보람되기도 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 강의에서는 사회적인 발언은 많이 안했는데, '석과불식(碩果不食)'에서 '박괘(剝卦)'를 표현하면서 WTO, IMF, FTA 등을 실례로 들었다.
"최근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민경제라는 카테고리라 너무 성급하게 무너지고 있다. 패권국가들의 민족주의 논리와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FTA에 비판적이어야 하지 않나. 한 나라의 시스템이 변하는데는 외부 충격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요한 단계가 있고. 우리나라처럼 너무 외래적이고 외부의존적인 역사전개과정에서는 오히려 이를 일정하게 차단해야한다.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에 물려 있는 부분을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 이야기는 사회적 담론과도 직결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많은 학생들이 그런 함의를 읽어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사회적 메시지 자제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퇴임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할건가?
"오랜동안 사회와 격리돼 있었기 때문에 시사적인 문제, 현안을 좇아가는 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오랫동안 근본주의적 사고에 충실했다. 다른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을 내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시간이 많아지면 보다 사회적인 담론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할 계이다. '나의 대학시절'이라는 제목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쓰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아내는 책도 계획돼 있고, '강의 3점'에서는 인간적 사회, 사회적 인간 등 정치경제학적 주제를 담아낼 계획이다.
한 사회를 바꾸는데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고민을 많이 한다. 대개는 그동안 운동적 사고로 강력한 주체성, 변혁주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변화를 가장 빠른 방법으로 여기는 근본적으로 합의가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20세기를 끝내면서 보면 20세기 동안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을 가졌던 파시스트, 사회주의가 사회를 바꾸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회를 불가역적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방법이 뭔가 고민해야 한다. 선거로, 대통령을 바꾸면 사회가 바뀌어진다는 생각은 이제 아닌 것 같다. 사회를 근본에 있어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름답고 그 가운데 사람들의 정성이 진실하면 아름다운 사회가 아닌가 한다."
- 퇴임 이후 활동 계획은.
"8월말에 퇴임식이 있다. 이후에는 총장 이하 여러 선생들이 결정할거다. 명예교수든 석좌교수든 하게 될 것 같고 2학기에도 대학원 한 강좌가 개설돼 있다."
- "우리의 근대사회 이러저러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자유로워야 할 근대사회'란 뭔가.
"우리사회가 키워내야 할 저력이라는 문제는 한 사회를 경영하는데 당장의 현실적인 성과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중장기적 사회적 토대를 튼튼히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성, 정치적 주체성이라는 구도를 장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경제학 일각에서 논의되듯 한국경제는 대외의존적이고. 시장, 원료, 기술, 자본 우리 자립적 토대가 취약하다. 이를 튼튼히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계기를 남북의 통일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민족경제론적 새로운 시스템으로 고민해야 한다.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 경제력을 고도화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보다 중장기적 뒷받침이 서야 한다."
- 그 입장에 대한 우려나 반대 의견도 많은데.
"현재의 세계경제질서는 특정 선진자본주의 국가들로 이뤄지는 패권적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구축되고 있다. 일정하게 중상위 그룹게 편입돼 이런 패권적 이해관계에 동참하려는 경영방식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패권적 질서에서 거리두고자 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것이냐,과도한 이념적 대응아니냐 볼 수 있다. 당장은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에서 동시에 뛰어내리자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개 국가 중심의 패권적 질서가 지속가능한가 의문은 가져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자립적 경제구조. 중장기적 대비가 일각에서는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역사라는 것은 현재사를 조금씩 꿔나가는 것이다. 급격한 단절이나 변화는 있을 수 없고 불가능하다."
- 오랜 수감생활을 통해 사회에 대한 분노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이를 해소할 수 있었나.
"출소 하니까 구치소 없어졌고, 김형욱도 박정희도 없고, 취조 받던 남산 수경사도 한옥마을로 바뀌었다. 변화한 세월, 변화한 사회를 보면서 우리가 증오를 갖는다는 것이, 특정 개인에 대해 증오를 갖는다는 것이 증오의 대상을 올바르게 발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격동기에는 반드시 일정 수의 사람들이 감옥을 채우는 법이다. 그중에 내가 있었다. 우리 사회가 격동 과정에서 당연히 일어날 수 있던 일. 그 가운데서 내가 감옥도 들어가고 했지 않나. 내 삶속에 들어온 사회나 시대의 모습을 많이 보아야겠다.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해서 갖지 않기로 노력하고 있다. (박정희, 김형욱 등)그 개인인들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
- 성공회대 교수로 오게된 계기는.
"친구가 성공회성당 옆 세실극장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출소해서 그 극장 간판을 그렸는데 당시 성공회성당 주교로 있던 김성수 총장과 이재정 신부(전 성공회대 총장)를 만났다. 두분이 내 책을 읽어보고 성공회대 학생들과 많은 부분 공유할 이야기가 있다고 판단해 강사로 초청했다. 이재정 신부는 "이 사람이 학교 고단에 있다 감옥에 갔는데, 나온 사람을 다시 그 자리에 세우는 것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도리가 아닌가" 말하기도 했다."
- 블로그에 최근 '앞으로는 남의 말 듣지 않고 살겠다'고 썼던데.
"농담조로 쓴 건데, 정년퇴임 앞두고 자꾸 과거를 돌이키는 생활을 갖게 된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심부름, 학교 다닐 때는 사회적 당위성이 자신의 진로 결정하는데 깊숙히 역할한다. 출소 후에도 선후배들이 이러저러한 당위성 주장 많이 하고 같이 하게 됐다. 한편에서는 여기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감옥에 있을 때도 내가 왜 여기 앉아있나 고민도 했었다. 이념인가 사명인가? 내 경우 양심 때문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같이 일하자는데 뿌리치고 남아 있었을 때 양심적 부담일 수 있겠다는...양심의 문제가 오늘 이 자리에 나를 있게 했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 첫 강의를 회고하면서 '학생들은 변하지 않고 있더라'고 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어떤가. 어찌보면 신 교수와 요즘 대학생들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처음 만났던 학생들과 요즘 학생들은 차이 있다. 사회가 그동안 급속히 변화했기 때문에 사회 변화가 학내에서도 마땅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구체적으로는 학생들이 과거 학생들보다 개인적 정서에 충실하고자 하는 분화된 모습도 보이고, 기능주의적 사고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다른 사회분야보다는 대학, 젊은 학생들은 그래도 근본적 사고에 충실하다. 그 점에서 아직 학생들과 공유되는 부분 많다. 최근 우려되는 것은 사회가 아주 막강한 감성적 포섭기제를 동원한다는 것.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방식 보면 오디오, 비디오, 감성 할 것 없이 학생들이 고도의 상품미학의 포섭기제에 쉽게 노출되고 영향받는 것 같아 우려된다.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이 이를 차단하거나 막아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거리감을 느낀다."
- 강의에서 '나무를 키워내는 시스템으로서의 숲'으로서의 학교,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현재 대학의 모습은 좀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 점에서는 낙관적이지 못하다. 한마디로 대학이라는 곳은 그 사회의 가장 창조적 산실이고, 창조적 담론의 산실이어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 공간이 자본의 요구에 밀렸다. 사회는 당장 사용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요구한다. 대학은 당연히 기능적 교육 중심으로 바뀌게 됐다. 대학이 긴 안목으로 지켜야 할 인문학적 가치가 급속히 폐기되는 것이 최근 대학의 모습이다. 낙관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아직은 젊은 학생들이나 대학을 지키는 많은 분들이 우리사회를 지키는 장기적 가치에 대한 열망이 있다. 이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