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카이스트 새 총장이 13일 취임했다. 서 총장은, 과학기술계의 히딩크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중도하차 한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뒤를 이어 카이스트 13대 총장이 됐다.
서 총장은 취임식 직전 "한국이 테크놀러지의 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며 “50년만에 한국에 와 중책을 맡게 돼 부담이 크지만 여러분들이 충고, 지도해 달라”고 입을 열었다.
서 총장은 특히 러플린 전임 총장이 ‘카이스트 사립화’를 주장한 데 대해 “대학이 장기적 안목으로 가기 위해 재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동조했다. 서 총장은 “‘국립’이든 ‘사립’이든 뭐라 불리든 상관없다”며 “정부든 국민이든 카이스트에 50억 달러만 투자해달라”고 요구했다.
러플린 총장이 손꼽히는 연구자였지만 대학 경영을 책임지는 리더로서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과 관련, 그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서 총장은 “미 과학재단 부총재로 미국 전체의 공학부문을 조율했고 MIT에서도 두 번째로 큰 기계공학과 학과장으로 10년을 재직했다”면서 “크고 작은 회사에도 있어봤고 이것저것 해본 것이 많은 만큼 모든 경험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또 연구와 기술개발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겠냐는 질문에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기초연구와 기술혁신 양 극단에 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른바 ‘양 극단 이론’을 소개하기 위해 서 총장은 그 자리에서 화이트보드를 활용해 짧은 강의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기초연구와 기술혁신을 ‘연구의 양 극단’으로 규정했다. 흔히 중간분야를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대학은 기초연구와 기술혁신 즉, 양 극단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전제로 연구 실패를 용인하고 리스크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정부가 카이스트 총장에게 주는 ‘미션’은 없었냐는 말에 그는 “어떤 미션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고 학내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반대자를 설득해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게 임무”라며 자신을 ‘관현악단의 지휘자’에 비유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윤리교육을 강조하고 여학생과 여교수 채용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1936년 경북 경주출생으로 고교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1959년 미국 MIT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사우스캐롤리나대 교수, MIT 교수, 과학재단 부총재(공학부문 총괄), MIT 기계공학과장을 역임했다.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 동포로 미국에서도 이미 손꼽히는 과학자로 명성을 쌓았다. 국외 국적자라는 면에서 전임 러플린 총장과 공통점도 있어,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고 있다.
카이스트 새 수장으로 서 총장이 발휘할 리더십에 국내 교육·과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 총장의 임기는 2006년 7월14일부터 2010년 7월 13일까지 4년간이다. 연봉은 36만 달러로 전임 러플린 총장이 받았던 40만 달러에 비해서는 다소 낮다.
다음은 서남표 총장과의 일문일답.
- 카이스트 총장에 공모하게 된 배경과 선임 소감은.
“얼마 전까지도 여기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여러 사람들의 권고가 있었다. 미국에서 할 건 다 한 것 같고 한국에 공헌을 하고 싶었다. 앞으로 10~20년 후에 카이스트가 한국 내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 된다는 건 문제 없다. 잘 나가는 몇 개 기업이 모든 분야를 독점하는 것처럼, 경제적으로 국제화되면 대학도 결국 중요한 몇 개 대학이 고등교육을 잡지 않나 생각한다. 카이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 되고 카이스트의 지식으로 한국과 대전의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4년이 짧지만 한국이 테크놀러지의 핵이 될 수 있다. 이를 시험하기 위해 여기 왔다.”
- 카이스트 총장 선임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받았던 미션은 뭔가.
"이래라 저래라 한마디도 아무도 안했다. 누가 그랬으면 안왔을 거다."
- 러플린 전임 총장이 ‘카이스트 사립화’를 주장했던 적 있다. 어떻게 보나.
“결국 대학이 긴 안목으로 가야하고 여기에는 재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학문이란 것은 시간소요가 길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같은 분야에 돈을 쓸 수 있는 재정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 매년 정부에서 예산받아 하는 시스템이어서 어떤 때는 길게 보고 기획하기 어렵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립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카이스트 재단에 돈을 많이 투자하느냐가 이슈다. 재단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카이스트 재단에 50억 달러만 주면 ‘국립’이냐 ‘사립’이나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일본의 동경대가 법인화했다. 그러나 계속 정부에서 돈 받아와야 하고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이건 아무 소용없다. 국민도 좋고 정부도 좋다. 누구든지 카이스트 재단에 50억 달러만 달라.”
- 러플린 총장은 정부와 카이스트 교수들과 마찰이 있었다.
“세상에 난관 없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정부나 교수들 모두 인류 사회와, 한국 사람들이 더 잘살아야 한다는 목표는 같다. 이를 동의한다면 방법론에 차이가 나더라도 극복해 함께 힘 모아야 한다. 카이스트 교수들과 목표를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목표를 분명히 하면 이를 달성할 수 있다.”
- 카이스트 내부에 서 총장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있다. 총장은 뭔가 결정할 게 많은 자리다. 반대자를 설득해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게 내 일이다. 이를 못하면 나는 총장으로서 실패한 것이다.”
- 전임 총장이 하던 사업의 방향 조정할 계획 있나.
"어제 처음 러플린 총장과 만나 한시간 반 정도 얘기했다. 구체적으로 러플린 총장의 구상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어려웠던 점 중심으로 들었다. 내가 가장 처음 할 일은 카이스트가 앞으로 4년 동안 뭘 해야 할지 목적부터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러플린 총장이 가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채택한다. 교수들의 아이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내 역할은 지휘자다. 모든 소리를 조화해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힘을 한 군데만 쓰면 안된다. 전체적으로 봐야한다. 교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겠다는 건 전체적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 러플린 총장에 대해서도 우려가 있었는데, 연구자와 리더로서의 능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서 총장은 연구자 이외에 리더로서의 경영 경험이 있나.
“큰 기관을 많이 다뤄봤다. 미 과학재단 부총재로 미국 전체의 공학부분을 조율했고, MIT에서도 기계공학과 학과장으로 MIT 내 두 번째로 큰 학과를 10년이나 운영해봤다. 이밖에 크고작은 회사에 있어봤다. 이것저것 해 본 것 많다. 이걸 다 활용해보겠다.”
- 한국 대학을은 요즘 ‘기술사업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카이스트는 연구와 기술 중 어떤 쪽을 강조할 건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카이스트가 할 것은 삼성등 기업과 같아서는 안되고 다른 미션이 있다. 첫째는 교육, 둘째는 연구개발이다. 카이스트의 연구는 기초연구와 기술혁신 양 극단에서 모두 활성화돼야 한다.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해답이 보이는 기초와 기술혁신 중간 부문 말고, 양 극단에 있는 것을 해야 한다. 그 쪽이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기초연구와 기술혁신 양 극단의 부문은 처음부터 ‘뭐가 나온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리스크를 이해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 지난해 한국은 황우석 충격이 컸다. 취임사에서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윤리성을 강조했는데.
“과학계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사회문제다. 사회에서 윤리를 높이 치켜주고 강조하면 학계에도 이런 문제가 덜 난다. 한국 사회를 잘 모르지만 윤리에 대해 등한시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윤리가 없으면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없다. 학생이나 교직원들 모두 ‘윤리, 윤리, 윤리’를 항상 강조해야 한다. 윤리는 몸에 배는 것이다. 윤리가 몸에 밴 학생을 만들어야 한다.”
- 여학생, 여성 교원 유치를 위한 복안이 있나.
“한국도 결국 여성의 브레인 파워, 여성의 모든 지식을 쓰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경쟁 못한다. 카이스트도 여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 여학생들이 대학원에도 40~50% 됐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면 여학생들이 과학기술에 진입했으면 하는 소망이다. 미국의 경우 마이너리티, 흑인과 소수계인종 우대 정책이 있다. MIT도 입학시 동점자일 때 여학생을 우선 입학시켰다. 특히 여 교수 수가 굉장히 적다. 여학생이 많은데 여 교수가 없으면 롤모델이 없다. 급한 문제 중 하나다. 좀 더 유연해야 한다.”
- 설계(design)교육을 주창해왔는데, 카이스트에서 어떻게 구현할건가.
“설계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공계 대학에서는 주로 분석, 해석하는 방법만 가르치는데, 아이디어를 조합해 문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정보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설계다. 전 세계에서 이를 제대로 학문화한 사람은 별로 없다. 카이스트가 돈이 없으니 몇 개 분야를 골라야 하는데, 이중 설계가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 대전 지역과의 협력은.
“많이 생각해봤다. 대전을 테크놀러지 허브로 만들겠다. 테크놀러지 허브가 몇군데 있는데, 이 가운데 대학이 꼭 있다. 카이스트가 지역과 함께 하면서 이를 실현하겠다. 이 지역에 좋은 연구소와 대학이 있는데도 같이 협력해 일하는 것이 없더라. 앞으로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