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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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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전 한국대학신문 주필
[김우종 칼럼] 남산골 선비
선비라는 단어 앞에는 흔히 '가난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렇게 궁상맞은 선비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곳이 서울의 남산골이다. 이희승 선생의 『딸깍발이 선비』에서 보면 그들 은 늘 꾀죄죄한 옷을 입고, 겨울에는 콧물이 잘잘 흐르고, 담뱃대를 빨 때는 볼이 옴폭 파이고 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나막신을 신고 다녀서 딸깍딸깍 소리를 내기 때문에 딸깍발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철 따라 갈아입을 옷도 없고, 얼굴가죽에 살이 안 붙 고 10년 이상을 딱딱한 나막신 하나로 견딘다는 것은 그들의 학문적 연구가 요즘말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선비는 양반 계급이다. 그들은 지배 계급이기 때문에 원래는 생산적 노동에 종사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었다. 그 렇지만 훗날에 이르러 토지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하고 벼슬길에도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은 선비들은 이렇게 가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능했던 선비지만 이희승 선생은 이들의 선비정신만은 칭찬해 주고 있다. 일제의 강압으로 내려진 단발령 (斷髮令)에 대해서 상투를 자르려거든 차라리 목을 자르라고 했던 그들의 고집을 상징적인 예로 들고 있다. 그런 정향 정신으로 그들은 항상 나라를 바로 잡는 비판적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해 갔다.

이에 비하자면 오늘날의 선비, 즉 교수를 비롯한 많은 지식 계급들은 너무 달라진 모습이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 에만 종사하는 데도 교수쯤 되면 아파트 한 채에 승용차 굴리고, 주말엔 골프장에 나가고 방학 때면 해외여행도 자주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전임강사 시절에는 전셋집으로 출발하더라도 나중에는 별장이나 콘도 하나쯤 갖고 있는 교수들도 있다. 연암 박지원이 소설을 통해서 묘사한 허생은 7년 동안 강연료나 원고료 한 푼 도 벌어 오지 못한 남산골 가난한 선비로서 마침내 아내의 바가지에 견디지 못해 가출해 버리지만 지금의 선비들은 일단 교수직에만 오르면 그 이상 욕심만 내도 된다.

그리고 그들의 학문은 당장 돈이 안 될 것 같은 분야까지도 우리 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유사시에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고 분노하며 저항하는 현실 참여 교수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한국인은 외국에 나가서 얼굴을 들고 다닐 형편이 못 된다. 웬만한 지식인들이라면 우리 나라의 이 꼴불견을 잘 알 것이고, 옛 선비들 같으면 정말 목을 자르고 덤빈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본지 주필·문학평론가>

김우종 칼럼 | 입력 : 99-04-10 오후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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