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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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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전 한국대학신문 주필
혁명가의 전향서
일본의 유명 작가 마쓰모토 세이쪼는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북의 시인』에서 임화를 주 인공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임화의 전향서 사건이 나온다. 1935년 카프 해체 때까지 시와

이론과 조직력으로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그가 일경에 체포된 후 거기서 써주고 풀려났다는 사상전향서다.

그런데 해방 후 1946년 10월의 대구 폭동에 가담했던 그는 미국첩보원과 비밀리에 만나서 폭동에 가담했던 자기 동료들의 명단을 건네주고 그 대신 그로부터 전향서를 받는다. 일제 시대에 썼던 전향서다. 해방 후 정열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어 나가면서 늘 그 전형서

가 탄로날까 봐 걱정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들을 팔아먹은 대가로 이것을 받아낸 후 불태워 버린다.

그런데 이 전향서 사건은 작가가 꾸며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 전향서를 쓰고 나왔다 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동료들을 팔아먹을 만큼 중요한 으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정말 동료들을 잡으러 다니는 앞잡이가 된 일도 없으니까. 다만 마쓰모토가 이런 얘기를 쓴 이유

는 임화가 북한에서 공개 재판때 스스로 미국 CIC의 첩자 노릇을 해왔다고 자백한 재판 기록이라는 것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 작가는 임화가 정말 미제 스파이였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임화도 희생자인 셈이다. 임화만이 아니라 자기의 확고한 사 상적 신념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다 죽어갔다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다. 그들은 가난하 고 억울한 인민을 위해서 나섰다고 확신했을 터이지만 원래 이데올로기 자체는 순수한 양심 의 표현일 수 있어도 불순한 정치가의 손에 쥐어지면 그것은 민중을 선동하여 지배자로서성공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도구가 된다.

이처럼 현실 속에서 그것은 대개 위대한 아무개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에

사상적 신념을 위해 싸운다는 것 자체가 흔히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기 쉽다. 그리고 이 것은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탐욕적인 정치가들에 의해서 얼룩진 나라의 역사가 모두 그렇 다.

이렇게 본다면 수십년간 전향서 쓰기를 거부해 온 이 나라 장기수들의 '양심의 자유'도 허

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런 순수성이 정말 가난하고 핍박받는 인민을 위해 바쳐진 역사가 과연 이 나라에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김우종 칼럼 | 입력 : 99-03-01 오후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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