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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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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전 한국대학신문 주필
( 김우종 칼럼 ) 버려진 국군 포로들
신고산의 398 포로부대에는 노래 잘 하는 서울대 음대생도 있었다.

신고산이 우르릉 화물차 떠나는 소리에 고무공장 큰아기 벤또 바꼬만 싸누나
어랑어랑 어허야…….

일제 시대의 『신고산 타령』이다. 그는 이렇게 한이 맺힌 식민지시대의 『신고산 타령』도 잘 불렀다.

이 신고산 깊숙한 골짜기에 식민지 시대보다 더 배고프고 고달픈 젊은이들이 모여서 398 포로부대가 된 것은 1951년 5월이다. 마오쩌뚱이 자국민들을 쓰레기처럼 쏟아 부은 인해전술의 포위망 속에 갇혔던 국군 사병들이며 여기에는 고교생, 대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북한은 이들에게 사상 교육을 시킨 후 인민군복으로 갈아 입혀 최전방 고지의 지옥전선에 배치했다. 그런데 대개 땅굴 작업만 하며 바깥 활동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포격이나 폭격을오히려 덜 맞았다.

그리고 휴전 직후에 이들은 모두 아오지 탄광 등으로 보내진 것이 거의 틀림없다. 포로 교환 때 귀환한 수가 지극히 적은 것으로 보면 그들은 거의 모두 그렇게 광부가 되었다가 배고픔과 추위와 과로로 죽어 갔을 것이 다.

지금 그들이 살아 있다면 70의 고령인데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들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노력한다면 돌아올 수 있을까?

이번에 석방된 미전향 장기수와의 맞교환설이 나오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젠 너무 늦었다. 버리고 떠나올수 없는 가족들도 있다. 늙은 아내나 자식과 손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국군 포로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반민족적 일본군 출신들이 판치기 시작한 국군 고위층이나 이승만 정권 또는 그 후의 일본군 출신 박정희 대통령 등은 끌려간 포로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일본군에서 배운 대로 차라리 죽어 없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 와도 환영은커녕 이번에는 이쪽 포로수용소에처넣고 자칫 고문이나 하고 이등병으로 강등시킨 후 다시 최전방으로 보냈다. 피눈물을 흘리며 기다리는 부모들도 못 만 나고 다시 전선으로 보내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휴전회담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송환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미 70년대에 남북적십자회담을 열 때에도 말 한마디 없다가 이제 불쑥 한마디 튀어나온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목숨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까 지도 한번 써먹고 나면 흔히 내버리고 그만이다.

휴전 후 복학하지 못한 학생들 중에는 그렇게 먼 곳에 내버려지고 잊혀진 희생자들도 많을 것이다.

<본지주필·문학평론가>

김우종 칼럼 | 입력 : 99-03-08 오후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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