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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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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칼럼] 전 한국대학신문 주필
[김우종 칼럼]황석영의 옥살이
우리 나라 사극을 보면 귀양 가는 인물들이 자주 나온다. 고향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멀리 깊은 산 속이나 섬으로 유배되어 가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처량하다. 그러나 유배도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다. 역적 모의로 3족이 멸하는 죄라도 저지르지 않은 이상 조선조 양반 고위층은 중죄를범했어도 감옥이 아닌 유배지로 보냈다.

그런데 유배지들이 비록 한양으로부터 천리길이 넘더라도 그곳은 대개 명승지다. 윤선도가가 있던 보길도나 추사 김정희가 가 있던 제주도가 그렇다.

송강 정철이 가 있던 관동지방도 그렇다. 그리고 거기서 『어부사시사』 『관동별곡』 등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나왔고 추사체의 명필이 나왔다. 벼슬을 하며 정쟁에 휩싸이던 그들이 오랫동안 무료한 시간을 갖게 되니 비로소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와 달리 힘없는 백성들이 일 저지르고 가 있던 감옥은 짐승 같은 옥리들의 잔혹 행위도 견딜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배를 곯아서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황석영의 『장길산』에는 이런 감옥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많은 역사적인 고증을 뒷받침해서 써나갔다는 이 소설을 보면, 식구들이 찾아주지 않는 죄수들은 결국 얼마 안 가서 대개 배가 곯아 죽을 수밖에 없다.

이광수의 『무정』에 나오는 평양감옥도 그렇다. 여주인공 박영채는 +아버지와 오빠들의 옥바라지를 위해서 동기(童妓)가 되지만 그래도 결국 그들은 모두 옥사하고 만다.

그후 일제말까지도 우리 나라 감옥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겨울이 한번 지나고 나면 그들이 덮고 자던 솜이불 한채의 솜이 다 없어지고 +홑이불이 되었단다. 배가 고파서 솜을 뜯어 먹고 허기증을 메우려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행히도 이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고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감옥에서 며칠전에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이 풀려났다. 나는

『한국현대소설사』에서 『장길산』을 「분단 후 가장 탁월한 걸작」으로 평가해 놓고 있다.

이런 작가가 만일 그동안 귀양살이를 했었다면 그 기나긴 세월에 또

얼마나 감동적인 명작을 써낼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가 있었던 곳은 관광 명승지가 아니라 감옥이었다. 미국의 O.헨리는 감옥에서 소설 쓰고 원고료도 벌며 유명 작가가 되었는데 한국의 황석영은 이름난 대표적인 작가인데도 그 많은 세월 동안 소설은 머리 속에서만 굴리며 그냥 썩고 있어야 했다.

김우종 칼럼 | 입력 : 98-03-23 오후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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