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몸을 던진 곳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자살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곳이
서울시민만의 자살교는 아니니까 큰마음 먹고 상경했다가 절망한 사람들도 자주 이용해온 것이다.
이런 한강 투신범이 지난 장점은 자기가 죽더라도 어디로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뒤에 남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궁금증을 남기기는 하지만 커다란 봉분을 만들어 놓고 +죽은 뒤에도 오래토록 자기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멋진 철학적 죽음이다.
자살을 자주 미화하는 일본인들은 '구모 가꾸레'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구름 뒤에 숨기'라는 뜻이다. 달이 구름 뒤에 숨어 버리듯이 자기가 죽을때가 되면 이 세상에 아무 미련도 남기지 말고 그처럼 가족 친지도 모르게 쇨 없이 사라져주는 것을 최고의 자살 미학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강에 빠져 죽는 사람을 굳이 건져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인명구제의 거룩한 일로 흔히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을 왜 굳이 살려내는 것일까. 자기가 자살 희망자의 고통을 책임져줄 것도 아니면서 자살을 +방해함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연장시켜 주는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다만 한강 투신자는 생활고 등으로 인한 비관 자살자가 많으니까 살아
남아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자살을 도와줘야 할 사람들도 많다. 머지 않아 죽게 될 암환자가 육체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서 자살을 희망한다면 죽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에 대한 사랑이며 아무도 그것을 막을 권리가 없다.
최근에 일급살인죄로 기소된 미국의 잭 캐보키언 박사는 그런 의미의 참된 의사가 아닐까? 그는 그 동안에도 수차에 결쳐 그같은 안락사를 도와주면서 법원의 심판을 받았다. 그래서 그만큼 비난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한국의 PC통신을 통해서 보더라도 "그의 얼굴을 한번 보라. 꼭 +악마 같지 않은가"하는 비난까지 있다. 그러나 그런 일부 비난 또는 투옥까지도 예상하면서 양심의 판단대로 인술을 실천하는 그의 태도는 칭찬해 줄 만한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