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그러나 소나무는 그처럼 멋지게 미화되어 우리가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감동할 수 있는 그런 의미로만 유추되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은 바람 부는 대로 그 환경에 어울리는 굴신 변형의 생리와 무관하지 않다. 소나무들이 있다. 아주 편하게 누워
버림으로써 강풍에 허리가 꺾이고 뿌리가 뽑혀 나가는 재앙을 미리 피하고 있는 것이다.
약자의 생존원리가 대개는 이렇다. 칼을 든 자에게 울화통을 못 참아서
맞서버리면 십중팔구는 목숨이 무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아니꼽고
치사해도 강자의 가랑이 밑으로 기는 것이 죽음을 면하고 장수하는 비결일 때가 많다.
이렇게 본다면 약자가 강인한 생명력과 푸름의 두 가지를 다 공유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남산 꼭대기 벼랑에 간신히 뿌리를 박고 버티면서 그래도 푸름을 항상 유지하는 저 소나무는 애초부터 상록수이기 때문에 푸른 것이지 한 민족이나 개인의 경우에는 이 두가지는 공존하기 힘든 모순성을 지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나무가 바람 부는 쪽으로 구부러지고 숫제 누워버리기까지 한다면 한 +민족이나 개인에게 있어서 그 같은 삶의 형태는 타협, 야합, 굴복, 순응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도 이 같은 의미로서의 소나무의 생리와 매우 +유사점이 많다. 강대국에 의한 오늘의 분단 현실만 봐도 그렇지 않을까?
분단의 주역은 강대국이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그 체제에 순응하며 그들의 소망대로 대리전을 치러 준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럼으로써 소나무가
기형적으로 구부러지며 생명을 유지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그런데 소나무의 그 같은 생존 형태가 사실은 조금도 소나무 자신의 +긍지나 자존심을 내던진 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이 소나무의 슬기라면 그 +같은 의미의 슬기는 우리 스스로도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강대국들이 +우리에게 분단을 원하고 으르렁거리기를 원하더라도 그것의 수용 여부는 +우리의 선택이며 그것은 우리들의 슬기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