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지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일본 쿠슈의 탄광으로 간다. 그후 다시고향에 돌아와 보니 아는 사람 하나 없다. 그리고 길가에서 우연히 옛 여자를 만난다. 그의 아내가 될 뻔한 여자였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유곽으로 팔려 갔다. 아버지의 짓이었다. 그후 성병과 주름살과 부채로 폐물이 된 그녀는 지금 일본인 집 하녀로 겨우 연명해가고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망령'으로 그렇게 팔려갔던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딸을 팔아먹는 일
은 너무도 배고파 굶주리던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러면이렇게 딸을 창녀로 팔아먹던 식민지시대 아버지들과 지난번에 자기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고 보험금을 타먹으려 했던 소년의 아버지와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 점이 있을까?
가난과 무지 때문에 이런 일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는 양쪽이 꼭 같다. 예전의 가난한 아비들은 그렇게 딸을 팔아
서 남은 식구들에게 죽이라도 끓여 먹이고 또 팔려 가는 딸에게 그렇게 해서 밥이라도 굶지 말라고 했던 것이 다.
소년의 아버지도 그랬다. 보험금을 타면 자식이 학교 급식비를 내서 점심을 굶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요즘은 하
루 한끼 학교 급식만으로 연명하는 아이들도 있는 모양이며 소년의 경우도 그렇게 가난했다. 그리고 일을 저지른 병
든 아버지 자신도 그것으로 당장은 끼니를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은 물론 감방에서 공밥을 먹고 있지 만.
이런 점에서 식민지시대와 지금의 그 아버지는 꼭 같다. 그리고비정하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는 행위야말로 너무도 섬뜩한 잔인성을 느끼게 하지만 자기 딸을 유곽에 팔아 넘기던 행위 역시 그렇
고 사실은 그보다 더 잔혹한 것이었다. 그것은 손가락 정도가 아니라딸을 지옥으로 보낸 것과 다름 없었으니 까.
그렇지만 식민지시대의 딸 판 아비나 오늘날 자식 손가락 자른 아비를무조건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일제만 없었다면 그리고 해방 후 지금까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온 저 뻔뻔스러운 살찐 도둑들만 없었다면 우리 아비들은 결 코 자기 자식을 팔아먹고 손가락까지 자르지 않고도 살아왔을 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