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누구의 작품이든 그 속에는 작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최일남 역시 자기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쑥이나 뜯어먹고 연명하다가 상경해서 '출세한 촌놈'이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무척 가난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서울대를 나오고 동아일보 문화부장이 되고 편집부국장까지 올라갔으니 시골서 소처럼 풀 만 뜯어먹다가 그쯤 되었으면 꽤 출세한 편이다. 그런데 그는 대학에 다닐 때까지도 너무 가난했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고향 부모식구들까지 도와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출판사에서 일하고 시험 때만 학교에 나오면서 그때마다 내 노트를 빌려갔다. 그런데 그렇게 가난했으면 그 한을 풀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더 악착같이 돈을 벌며 아
내도 호강시켰어야 했는데 그는 달랐다. 그는 70년대 박정희 정권 때까지 부하직원들을 해직시키도록 명이 떨어지자 이를 거부하고 자기가 사표를 내버렸다.
그후 얼마간 쉬다가 다시 복직되었지만 80년대 초에 다시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 해직되었다. 정권이 무너진 후 그 정도면 큰 소리를 치고 나올 법도 한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냥 소설만 열심히 쓰며 이 시대의 증인으로 남은 것이다. 옛날의 비슷한 동료들은 언론계
에 있다가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었는데 왜 그는 그 흔한 자가용 한 대 없이 헌 구두
신고 버스만 타고 다닐까? 남보다 못사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고통 을 누구보다도 많이 겪은 그가 결코 그 같은 속물적 가치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멋져 보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다시 가난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져도 비굴하지 않게 살며 예전 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이 고난의 시대를 이겨낼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