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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장 사퇴파장 교훈과 과제>
‘지성의 표상’ 버리고 ‘CEO 위상’ 선택 자충수
신자유주의 경쟁논리만 좇은 결과 대학권위 상실
“디지털화·물질만능에도 상아탑은 학문적 권위가 우선”
사외이사 겸직 문제, 연구비 미신고, 판공비 과다지출 등 학자로서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사의를 표명한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 지난 9일 이임식을 갖고 학교를 떠났다.

총학생회가 총장실을 점거하고 교수협의회 등 서울대 교수사회에서 조차 총장 퇴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자리를 지킬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로서도 내키지 않았으나 시민단체까지 들고 일어서는 등 여론이 극도로 악화돼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서울대 총장의 중도하차는 단순한 개인의 퇴진이 아닌 오늘의 대학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대학 총장의 역할이 재조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 전 총장의 경우 ‘지성의 표상’이라는 권위를 스스로 버리고 CEO의 위상을 선택했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을 모토로 각종 개혁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장의 이같은 선택은 충분한 의견수렴없이 경쟁과 규모의 논리로 일관했으며 이것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대학원 지원강화, 교수 평가 엄격화, 연구업적 강화 등을 추진했고 외국 유수대학과의 교류에도 열성이었다. 또 자율성 확보 차원에서 대학운영구조 개선 등을 통한 대학재정 확보에도 힘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총장실을 점거하는 등 학생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2000년 11월 개교 이래 처음으로 교수협의회가 총장 중간평가를 실시한데 이어 교수들의 모집단위 광역화 반대 등이 이어져 내부 단속에 실패했다. 게다가 서울대생의 대학원 기피 현상과 이공계 위기까지 잇따른 악재가 발생하면서 ‘대학원 중심 대학’은 사실상 빛을 잃고 말았다.

개혁을 강조하며 밀어부친 ‘독단적 학사운영’이 반발에 부닥쳐 좌초했다는 게 서울대 안팎의 분석이다.

서울대 민교협의 K 교수는 “이 전 총장의 퇴진을 계기로 서울대는 물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재점검해야 한다”며 “마치 기업과 같이 확장을 추구하는 시장경제 논리에 대학이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아무리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지만 최고의 지성을 자부하는 서울대의 총장이 정·관계 인사들의 선물로 판공비의 상당 부분을 썼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어떠한 이유로든 대학이 로비에 나서는 것은 지탄 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내부의 이같은 자성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 전 총장의 불명예 퇴진으로 대학총장의 권위는 다시 한번 격하됐다. 과거 ‘사표(師表)’로 불리었던 이미지가 퇴색한 것은 물론 미국식 교육이 추구했던 CEO총장의 폐해만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는 이 전 총장의 조기 사퇴 공백을 매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9일 임시학장회의에서 총장후보 선정을 관장하는 ‘총장후보선출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상태다. 위원회는 후보대상자 지명과 투표를 49일 이내에 마쳐야 하므로 내달 말이면 신임총장이 선출된다. 이미 총장 후보로 13~14명이 거론되는 등 혼탁의 조짐이 일고 있다.

이번 서울대 총장의 조기퇴진은 모든 것을 경쟁논리로 풀려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대학교육 정책의 전반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또 어떠한 개혁이라도 학내 구성원의 공감대와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상아탑은 아무리 사회가 디지털화하고 물질만능으로 변하더라도 최소한의 양식은 지켜져야 한다.” 서울대 총장 조기퇴진 파문을 지켜본 어느 노 교수의 독백이다.<이대희 기자>

이대희 기자 (news@unn.net) | 입력 : 02-05-13 오전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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