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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집회장화' 악순환 해결책 없나>
관련법 개정 등 정치권서 제도 정비해야
면학분위기 훼손 안돼, 노-사 협의구조 정착 시급
"우리가 갈 곳이 이 곳 밖에 없어 부득이한 상황이다." "집단의 이익을 주장하는데 대학이 휘둘릴 수는 없다."

현행 법규상 파업이 불법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지할 곳이 그리 많지않다는 노동자들과 학문의 전당이 시위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대학간의 마찰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동자 등 외부세력의 학내 진입과 장기농성에 따른 후유증으로 대학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뚜렷한 개선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학문의 전당이 훼손되어선 안된다는 대학측의 주장과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가 대학 공간을 이용하는 것은 부득이하다는 노동계 및 종교계의 반박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특히 올해는 등록금 인상문제와 관련해 학생들과 대학당국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지난달 가스공사․발전산업노조의 대학내 농성에 대해 각 대학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서울대 연세대 등이 노동자들과 연계한 학생회를 고발하고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데 있다. 현행법상 조정기간을 거치지않은 파업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정치권은 뒷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대학들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한국전력노조와 레미콘노조의 장기농성으로 홍역을 치렀던 서울대의 고민이 가장 크다. 김기선 학생부처장은 "노동자들이 '학생들이 나가라면 나가겠다'며 학교당국의 입장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며 "집단의 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대학이 희생돼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대학에 '캠퍼스 폴리스'가 있어 불법적인 집회의 경우 가차없이 쫓아낸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학에 최소한의 공권력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이 대학측과 재야.노동계가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지만 노사간 협의체제 구축과 함께 정치권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일치하고 있다. 발전산업 등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조정기간을 거치더라도 중앙노동위의 직권중재가 있을 경우 현행법상 파업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위헌논쟁을 불렀다.

권영국 변호사는 "현재의 노동쟁의조정법의 직권중재는 공익사업장에서의 파업을 사실상 불허하는 것으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도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다수 의견을 내놓고 있는 만큼 국회가 법 개정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서울대 손봉호 교수(사회교육과)는 "종교기관의 경우는 이해가 되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학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않다"면서도 "노동 3권과 관련된 기본권리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노사 양측이 해결하고 정치권이 나서서 법체계의 문제점 등을 고쳐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억압적 상황에서 비판세력인 대학생들의 도움을 받겠다는 의도에서 대학 공간을 이용했던 것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는 얘기다. 손 교수는 "국민들간에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공부를 해야하는 대학이 집단의 논리에 희생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재야운동세력은 민주화가 상당히 진행됐다곤 하지만 현재의 사회구조와 노동쟁의조정법 등을 감안할 때 약자인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종교기관과 대학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양준석 사무국장은 "사측과의 대화가 안되는 상황에서 실정법만 앞세워 불법으로 몰아부쳐서는 안된다"며 "집권당인 민주당 조차도 부당성을 주장하는 민영화 반대가 집단 이기가 아니며 최소한의 권리주장이며 국회가 관련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조계종 박희승 기획과장은 "노동자들의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현재 종단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경내 집회가 상당히 부담스럽다"며 "노사문제로 풀릴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지도층이 힘을 모아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관련 정치권 일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대 총장을 지낸 한나라당 현승일 의원(교육위)은 "어떤 측면에서든 외부 힘에 의해 대학의 면학분위기가 훼손돼선 안된다"면서도 "정치권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준비로 현안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조만간 교육위를 열어 대학내 면학분위기 조성과 관련한 안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법제.노동 등 관련 상임위와의 협의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이대희 기자>

이대희 기자 (news@unn.net) | 입력 : 02-03-30 오전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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