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군살을 제거하고 대학간 통·폐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던 교육인적자원부의 당초 개혁 의지는 수차례의 공청회와 전담기구 설립에도 불구,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정권 초기 국립대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던 정책 방향이 잦은 장관 교체와 교수사회의 반발 등으로 윤색되더니, 올 들어서는 구조개혁이나 의사결정구조 등 논란이 돼왔던 사안은 슬그머니 감춰진 체 회계제도를 바꾸는 재정 운용의 부분 개선안에 그쳐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정부가 추진해온 국립대 개혁안의 실시 배경과 문제점을 쟁점을 중심으로 진행된 교육 세미나를 바탕으로 재점검한다.<편집자>
□ 국·공립대 교육 자율화의 의미와 과제
- 교수 참여한 의사결정기구 설치 필수
- 지방 국립대 지원 특단대책 마련돼야
최근 들어 대학에 제기되는 개혁은 정부나 기업처럼 대학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추진되고 있으며, 단순히 교육과정이나 방법 개선에 머물지 않고 대학의 경영시스템 전반에 걸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달 30일 한국교육개발원이 개최한 ‘한국교육의 경쟁력’ 포럼에서 전남대 이경운 교수(법학)는 ‘국·공립대학 교육자율화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말하고 “국립대학의 경우 재정의 대부분을 지원하는 정부의 개혁 시도가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교수의 주제발표 쟁점 요약.
■ 국립대 조직 = 국립대학발전계획에 따르면, 자율과 책무에 기반한 대학운영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중기과제로 국립대학을 책임운영기관화 할 것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는 대학 총장의 운영상 자율을 보장하는 것이 두드러질 뿐, 학문 자유 보장이나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 자율과는 거리가 있다. 더욱이 책임운영기관의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의 틀은 그 중첩적 감독체계 때문에 그나마 총장의 자율마저도 현재 보다 진전된 것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대학의 특수성을 감안한 특별한 규율을 첨가한다는 전제 아래 원리적으로는 대학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특수법인화 방식이 대학자율 보장의 이념에 더 부합하는 조직형식이라 하겠다.
■ 의사결정기구 = 현행 고등교육법과 국립학교설치령에 의하면 국립대학은 교무통할권을 갖는 총장을 정점으로 처·실·국장과 학·원장, 행정실 등의 보조기관 및 하급행정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대학의 법적 성격을 사단으로 이해한다면, 집행기관 외에 합의제 의사결정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는 대학 조직에서 근간의 하나에 해당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고등교육법에 관련 규정을 두어야 한다. 또 연구 교육의 주체로 구성되는 교수회의 위상을 분명히 하면서, 규모가 큰 대학의 경우 대학운영의 개방성을 높이고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기구가 모색돼야 한다. 대학 외부인사로 구성하는 이사회 제도는 이제까지 우리나라 대학전통에 친근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교수를 주된 구성원으로 하되 일부 학외 인사 등이 참여하는 대학평의원회의 구성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재정 = 현재 국립대학은 예산 편성, 집행, 감독에 대해 일반 행정기관과 똑같은 예산회계법령의 규제를 하고 있어 자율성과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국립대학 특별회계제 도입이 검토돼 왔다.
계획안에서 제시되고 있는 국립대학특별회계법안은 단식부기의 현금주의회계기준이 적용되고, 대학별 세입세출예산은 특별회계 내에 각 대학별 계정으로 구분돼 계리된다. 나아가 특별회계 관리 운영에 있어 자체 수입금 관리 운용은 대학의 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
안에 따르면 국립대학특별회계에 통합되는 것은 일반회계와 국유재산특별회계 및 기성회계로 한정된다. 그러나 개별 대학 입장에서 볼 때,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는 한 재정운영의 자율성 증대효과 보다는 오히려 교육부 통제가 강화되는 측면이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예산의 배분이 보다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행정기관의 자의가 개재할 여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재정지원의 목적, 범위, 기준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해 예측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 자율화의 과제 = 대학의 자율 보장은 대학이 경쟁력을 갖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며,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국립대학에 투자하는 재정규모, 교수 1인당 학생수 등 현재와 같은 교육환경 속에서 국립대학에 세계적 경쟁력을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국가가 국립대학을 설립 운영하는 것이 결코 수익을 올리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면, 수익자부담원칙을 강조하거나 투자에 대비한 계량적 성과를 성급하게 찾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의 국립대학은 지방소재대학이므로 국립대 발전은 동시에 지방의 균형발전으로 연결된다. 현재의 지방대학 위기는 자체 경쟁력 저하에 연유하기보다 모든 영역의 불균형구조에서 비롯되므로 이를 혁파하기 위한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질적 표준의 역할을 하는 지방 국립대에 대한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고 경쟁력의 향상을 말하기 어렵다.
<송찬영 기자>
□ 국립대 개혁을 보는 정부 시각
-. 교육부, 대학 운영 시스템 개선이 관건
-. 기획예산처, 교육투자 성과와 경쟁력 제고 필수
국립대 특별법 시안 마련이 임박한 가운데 지난달 30일 한국교육개발원 주최 토론에서 교육인적자원부와 기획예산처 담당 과장이 나와 일단을 토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인적자원부 김응권 대학행정지원과장은 토론에서 “대학에 자율성이 없다는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며 ”학문 연구와 교육 자유는 어느 정도 실현됐지만 이를 지원하는 대학 운영시스템이 부족해 나온 현상“으로 이해했다.
김과장은 국립대 재정 문제와 관련, “일반회계와 기성회 회계의 이중성에서 오는 문제점을 시정하는 회계제도 도입이 필수“라며 ”대학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신장하면서도 동시에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의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의사결정기구와 관련해서는 “일정 배분에 따른 교수 참여를 보장하는 이사회의 법정기구화는 장점이 있지만 획일적으로 모든 대학에 적용하면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며 “교수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하더라도 대표가 참여하는 대의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과장은 특히 “국립대학의 특수법인화 또는 책임운영기관화는 무엇보다 교직원의 신분문제와 관련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오히려 자율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해 정부가 강행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예산을 관할하는 진영곤 기획에산처 기금정책국 기금총괄과장은 대학에 대한 책무성과 성과를 더 강조하는 캐이스.
진과장은 “대학 자율은 최대한 존중돼야겠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대학운영의 효율성 제고를 통한 교육투자의 성과와 대학의 경쟁력 제고라는 사회적 요구에서마저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진과장은 특히 교수연봉제 도입, 승진제도 강화, 연구업적 평가에 따른 연구비의 차등 지급 등 대학사회의 경쟁촉진을 위한 제도들이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는다면 우리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진과장은 “정부의 재정능력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모든 대학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정도의 재원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부분 국립대가 비슷한 학과구조를 유지하고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인력공급을 계속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는 교육투자를 늘려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해 예산당국의 시각을 반영했다.
□ 잦은 장관 교체로 굴절된 국립대 개혁
-. 민영화, 대학간 통폐합 등 공염불 그쳐
-. 기본계획 지연, 선거철 겹쳐 ‘개혁 물 건너갔다’ 시각도
IMF의 비상 경제체제 속에 사회 각 부문의 구조 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 99년 현 정부의 첫 교육부 수장을 맡은 이해찬 장관은 대학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한다는 의미에서 임기 중 “국립대 1곳을 시범적으로 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 역시 이같은 정책기조에 맞장구를 쳤지만 그다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문용린 장관 시절인 2000년 7월에는 국립대학간 기능과 역할을 분담해 효율성을 기한다는 내용의 개혁안이 나와 국립대를 각각 연구, 교육, 실무교육, 특수목적 중심 등 4개 유형으로 개편하겠다는 수정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교권단체를 중심으로 “획일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계획”이라며 반발하자 ‘국립대 발전계획추진위원회‘란 기구까지 만들어 놓고도 이돈희 장관 취임을 계기로 대학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사실상 후퇴했다.
2000년 12월에는 구조개혁이란 명분이 약해지면서 국립대 발전계획으로 이름이 바뀌어 국립대 역할 분담 및 연계체제 구축, 대학운영시스템 개선, 질 관리체제 확립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국립대 중 몇 개를 ‘책임운영기관화(Agency)’하고, 총장 직선제를 개선한다던 당초의 계획은 대학가의 반대와 직선제 고수 의지로 유보됐다.
7개 권역별로 유사·중복학과가 많은 국립대를 통폐합하고, 단과대와 학과를 교환하는 빅딜을 연차적으로 추진하겠다던 계획 역시 한완상 부총리가 2001년 1월 취임하면서 추진 강도가 약해지더니 지금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올해 2월 이상주 부총리 취임 이후 발표된 국립대 특별법 제정 움직임은 현재 학교회계를 도입해 경직성을 탈피하고 재정부담을 수익자에게 확대하는 내용의 회계제도 개선안만 나왔을 뿐 논란이 된 국립대 조직 구조나 의사결정기구 개선 방향은 기본 원칙조차 언급되지 않은체 세월만 보내고 있다.
올해 국립대 구조개혁을 위해 책정된 재정 지원 자금은 4백억원. 국립대 개혁안이 윤색되면서 예산을 타내야 하는 교육부 입장에서는 자금 지원에 걸맞는 성과를 요구하는 기획예산처를 설득하기도 만만치 않은 눈치다. 설사 기본안이 마련되더라도 선거철을 맞아 교육 현안에 관심이 먼 정치권의 파행을 감안할 때 당초 일정대로 6월 국회 제출과 연내 입법 추진 자체가 불투명한 실정. ‘현 정부 내에 국립대 개혁은 물 건너가지 않았느냐’는 얘기가 실무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은 대학대로 당국은 당국대로 입씨름만 벌이는 동안 세계 유수대학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한발 앞서 체질개선을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이 지난해 6월 문부성 주관으로 국립대 재편·통합 구상을 밝혀 전국의 1백여개 국립대 중 24
개 대학이 이미 통합에 합의하고 12개 대학은 통합을 협의 중이며, 도쿄의 4개 도립대학은 2005년을 목표로 통합을 추진하는 것과 비교하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아무리 좋은 개혁이라도 교육현장과 괴리돼서는 곤란하지만 국립대학은 사립대학과는 달리 국민의 막대한 세금이 투여된다는 점에서 이제 국립대학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체질개선과 발전계획 수립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지적이다. <이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