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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대학비사 , 해방 후 친일 교육자 강도높게 비판
해방 후 교육계 성향과 주도 세력 평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시비를 계기로 불어 닥친 친일 과거사 청산 문제가 정치권을 넘어 대학가에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주요 대학의 총학생회나 동아리연합회 차원에 국한돼 명단 공개와 설립자 동상 철거 등 제한적인 범위애서 이뤄지고 있지만 결과에 따라서는 교육 공과를 놓고 학계에 뜨거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이런 논란은 특히 일제 시대에 대학을 운영한 설립자나 재단 관계자 가운데 친일 전력이 있는 성신여대, 서울여대, 상명대, 홍익대, 인덕대, 추계예술대 등 다른 대학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신학기를 맞은 대학가에 핫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사실 이들의 친일 전력 시비는 해방 후 지난 60여년간 교육계에 광범위하게 회자됐지만 교육 공과에 대한 시각이 엇갈려 정작 제대로 된 평가나 청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덮어져 왔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지가 지난 2000년 해방 전후 교육사와 대학내 숨겨진 역사를 다룬 연중기획 시리즈 ‘김우종의 대학비사’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일제 청산 문제를 5년 전에 정면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 비사는 특히 해방 전후 국내 고등 교육계 상황에 대한 평가와 주도 세력들의 친일 행적을 김우종 당시 주필의 경험담에 근거,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 당시 대학가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전문은 본지 온 라인(www.unn.net) '김우종의 대학비사' 참조)

대학 비사에 따르면 해방 공간에서 교육선각자 그룹으로 교육계를 이끌던 그룹은 유억겸, 김성수 등 11명이 참여한 한국교육위원회를 비롯해 오천석 등 60여명이 참여한 조선교육심의회와 이병도 윤일선 등 20여명이 참여한 조선학술원이 있었지만, 특히 친일 전력에 자유롭지 않은 유억겸, 김성수, 백낙준, 김활란 등이 참여한 한국교육위원회는 각 도의 학무국장 이하 읍·면의 교장인사까지 도맡아 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교육계 실세 그룹으로 성장했다.

김 주필은 당시 해방 공간에서 교육계를 좌우했던 이들의 출신 성향이나 배경에 대해 “대부분 양반이나 관료, 중산층 이상의 보수적 인사로 학력은 미국이나 일본, 영국 등지에서 고등교육을 마친 고학력자였다”며 “이같은 색깔로 우리나라 교육은 미군정 초기부터 중앙집권적, 하향적, 보수주의적 색체를 띠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김주필은 특히 “미군정은 참여 인사 중 이해관계가 맞는 이들 일부 교육 관료들과 중요한 일들을 처리함으로써 해방 후 당면 과제인 분단과 교육자 부일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며 “특히 미군정 3년이 지난 뒤 구성됐던 ‘반민특위’마저 경찰에 의한 백주의 태러로 무산되면서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이 땅에서 요원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일형 기자 (news@unn.net) | 입력 : 05-03-26 오전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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