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출근
신촌 로터리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출근. 웬 골목이 이렇게 많은지.
오전 9시~12시 오전업무
독일 연구실에서 온 이메일을 체크, 해외 논문·잡지 검토. 다음엔 어떤 논문 쓸까 고민이다.
연구실 기자재 검색, 업체 관련자와 통화. 싸게 사야 되는데….
연구비 지원 프로젝트 준비. 연구비 따내려면 아이디어가 필요해.
오후 12시~1시 점심시간
화학과 교수들과 교직원식당에서 점심 먹고 커피 마심. 같은 과 교수들이 모여 식사하는 게 특이하기도 했지만 선배들로부터 학교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오후 2시~4시 45분 강의
대학원 수업. 길 헤맬 것도 걱정되고, 파워 포인트로 수업하려면 컴퓨터 부팅도 해야 해서 일찍 교실로 갔더니 오히려 학생들이 더 늦게 도착했다. 그래도 교수가 먼저 성실함을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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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이화여대로 출근하게 된 김영독 교수(나노과학부)에게 올해는 조금 특별하다. 이화여대 신임교수로 임용돼 처음 강단에 서게 된 새내기 교수이기 때문. 한 달 정도 출근해보니 어떤가 묻자 김 교수는 “정신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2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오긴 했지만 독일로 건너간 후 만 9년 만에 귀국하는 거라 아직 모든 게 낯설어요. 길도 많이 헤매고.”(웃음)
김영독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석사까지 마친 후 독일로 유학을 갔다. 97년부터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5년간 미국 텍사스 A&M대 연구소, 독일 콘스탄츠대 연구소 등에서 일했다.
외국에서 더 머무를까 고민하다가 귀국을 결심, 우연히 이화여대 채용공고를 보게 됐다. 그렇게 김 교수는 아직 책상 2개만 덜렁 놓여진 교수연구실에 자리를 잡게 됐다.
온통 여학생뿐인데 적응이 잘 되냐고 묻자 그는 “이번 학기는 소규모 대학원 수업만 맡았다”며 “학부 수업은 여학생들 몇 백 명이 쳐다보니까 처음엔 좀 힘들다던데, 대학원 강의는 연세대, 서강대 등에서 온 남학생들도 있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김 교수는 “대학원만 해도 그렇지만 자연과학 분야에 여학생이 적다”며 “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연과학 분야의 여성 인력을 키워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김영독 교수에겐 분명한 각오 하나가 생겼다.
순수과학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수업을 통해 노력하겠다는 것.
김 교수는 “독일 학생보다 한국 학생들이 더 열심히 연구하는데 비해 결과물들을 잘 설명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학생들이 발표나 토론을 통해 참여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신임 교수에게 고민이 없을 리 만무하다. 이제 첫 달을 보내고 있는 그에겐 연구비를 따내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
학교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는 연구실 컴퓨터를 구입하는 것으로 끝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해 공동으로 진행할 파트너를 구하거나 외부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따내야 한다. 김 교수는 독립 연구 경력 5년차임에도 연구비 지원을 따내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올해 말에 있을 조교수 승진심사도 걱정거리 중 하나다.
그는 “요새는 SCI논문 인용 건수 등 다양한 성과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며 “빠른 시일내에 연구를 진행해 논문을 제출해야 승진심사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슬쩍 부담감을 드러냈다.
다소 우울한 현실에 낙담하려는 찰나, 김영독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이제 시작하는 거니까요”라고 말이다.
그러나 김 교수의 포부는 당차다. 표면화학, 특히 촉매에 대해 연구해 왔던 그는 국내에서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 어떻게 촉매를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할 계획이다.
“연구자로서는 그동안 해왔던 연구 수준을 유지하고 국제적 수준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해야죠. 교수로서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자연과학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그게 정말 고민이에요.”
※김영독 교수의 하루 일과는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