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섭 총장은 지난 1994년 8월 어느 날, 현승종 건국대 이사장(전 국무총리)으로부터 건국대 총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는 전화를 받고 '무슨 하실 말씀이 있나 보다' 했지만, 현 이사장의 느닷없는 제의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알다시피 우리 학교가 관선 이사 체제잖습니까. 와서 나 좀 도와주십시오."
연세대에서 30년간의 교수생활을 거쳐 한국교총회장, 한국교육개발원 이사장, 1년 2개월 동안 정부의 교육정책 수장인 교육부장관을 맡았던 윤형섭 총장이 처음으로 대학 총장이란 직책과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당시 건국대는 서울 소재의 규모 큰 대학이었지만, 교수와 직원 학생간 마찰로 전임 총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등 학내 분규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 속에서 제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대학 구성원간 의견을 조정해 대학을 안정시키는 것이었죠."
1998년, 건국대에서는 처음으로 4년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친 그는 대통령 직속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공직에 잠시 머물다 올해 1월, 다시 제6대 호남대 총장으로 대학운영 일선에 돌아왔다.
호남대는 건국대 총장 시절과는 달리 대학설립 1세대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는 대학으로 평화구축자로서 조정자 총장 역할이 필요 없었다. 대학 구성원들에게 발전적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교직원과 합심해 대학 미래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떠나 있는 불과 몇 년 동안 대학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대학의 교육논리가 경제 논리에 완전히 압도당했어요. 총장도 돈 끌어오는 경영자 총장이 대접받더군요."
그는 학문과 인격의 상징인 교수가 학교 당국과 교육부에 의해 평가되는 대상이 돼버렸다고 했다.
교수가 점수 매겨 지는 과정에서 예전의 권위 있는 교수는 더 이상 존재치 않고, 훌륭한 교수의 잣대는 연구비를 많이 끌어들이는 액수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학생은 일방적인 교육 훈련 도제 실습의 제자에서 고객으로 바뀌었다. 대학과 학생 관계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거래' 관계가 되었다. 그 동안 대학 스스로 결정했던 등록금 인상 마저 외부의 공정거래 위원회가 관여하고 있다고 정 총장은 한숨을 내 쉬었다.
"대학은 학문과 인격도야의 마당에서 오늘에는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의 공급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치 불량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대학 존재 차체를 의심받고 있어요. 어쩌면 이미 대학이 노동부 산하 직업 훈련원이 돼 버렸는지도 모르지요."
윤 총장은 이러한 대학 위기 상황을 헤쳐 가기 위해서는 대학총장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총장 유형을 해방 후 변천돼 온 대학사을 기준으로 크게 4가지로 나누고 나름의 대학 총장 상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첫째, 지도자형 총장. 이 유형은 1960년대까지 보여준 대학 총장 상으로, 유진오 총장 김활란 총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지도자형 총장은 대학의 수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 학문적 권위도 매우 높았으며 광복 후 혼돈의 국가와 민족의 갈 방향을 제시하는 민족의 지도자였다.
둘째, 기능형 총장. 이 유형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권위주의가 대학을 유린하면서 생긴 총장상으로 대학에 현실주의가 싹트면서 생겨났다. 자금을 누가 더 잘 끌어오고, 기업처럼 대학을 어떡하면 잘 경영하는가가 이 총장유형의 관심이다.
지도자형 총장의 목표가 가치 창출이었다면, 기능형 총장은 이익 창출이다. 요즘 기대하고 있는 총장 상이다.
셋째, 평화 구축자형 총장. 사회의 민주화에 따라 대학 내 민주화가 요구되고 따라서 구성원들의 이해가 맞닥뜨려진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다소 과도기적 총장형이다.
넷째는 합리적 절충형 총장이다. 현실적으로 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대학을 잘 운영하는 경영자로서도 훌륭하지만, 철학적 덕목과 가치판단능력을 가지고 있어 대학 구성원을 이끌어 가는 지도력을 갖춘 총장이다.
윤 총장이 지향하는 총장형이 바로 합리적 절충형 총장이다. 윤 총장은 지금의 대학을 '위기의 대학'으로 규정짓고, 대학총장은 변화에 편승하기보다는 가치창출을 위해 오히려 변화의 방향을 유도하고 이끄는 리더가 돼야 한다며,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학교 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