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세우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학계도 줄을 서서, 내가 너희보다 앞에 섰느니, 너는 내 뒤에 썼느니 하면서 지내게 생겼으니 학문하는 사람들의 고달픔도 앞으로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소위 ‘학술지 등급평가’라는 교육부가 위탁하고 학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사업에 대한 이런 저런 논란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은, 평가 당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 객관성과 공정성 및 엄정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의견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학술지 평가에 대한 신뢰성에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학술진흥재단은 지난 2000년에 13개 분야 학술지를 평가하여, 소위 산술적인 비율로 그 등급을 매겨서 해당 학회의 적지 않은 반발을 산 바가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01년에 다시 8개 분야의 학술지 등급을 역시 같은 방법으로 분류 발표함으로써, 1999년부터 시행하여 2001년 상반기부터 확정한 학술지 등재사업의 결과와 상충하는 결과가 발생하여 학술지 등급화 사업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학술진흥재단 측도 이런 문제점을 감안하여, 기왕에 매겼던 A, B 등급이라는 매김에 무게를 두지 않고, 두 등급 모두 학진 등재후보 학술지와 같은 대우를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는 있다.
학술지 등급 평가 결과, 3년여에 걸쳐 비교적 공정하고 엄정하게 평가되어 등재후보 또는 등재학술지로 결정된 학술지가 C등급을 받고, 등재후보에서도 탈락했거나 등재평가를 받지 않은 학술지가 A, B 등급을 받는 등의 웃지 못 할 난센스 같은 결과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학문을 줄 세우고, 이를 순서대로 30%는 A등급, 다음 30%는 B등급, 그 다음 30%는 C등급 하는 식으로 내린 평가 결과는 어떤 논리로도 결코 해명되지 못할 것이다. 학문의 질이 그렇게 비율로 엄격하게 나누어진다면 모르되, 세계 어느 나라도 학술지 등급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매겼다는 얘기를 들어 보지는 못했다.
쉽게 말해서 ‘가’ 분야의 학술지가 10개이고, ‘나’ 분야의 학술지는 30개라고 할 때, ‘가’ 분야는 학술지 모두 국제적인 유명 학술지이더라도 3개만 A이고, 나머지는 각각 B, C 등급의 학술지가 되어야만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분야의 학술지는 상위 몇 개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수준에 문제가 있는 학술지인데도 상위 30%인 10개는 A등급의 우수한 국제 학술지로 평가받는 모순이 생긴다는 사실을 교육부와 학술진흥재단은 간과하고 있다.
진작부터 우려했던 현상이긴 하지만, 유난히 A등급이나 1등급을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기왕에 발표된 그 등급에 따라 우리의 학계가 서열화 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정성적 평가보다는 정량적 평가로, 아니면 여론몰이 식 잣대로, 아니면 심사 팀의 지극히 주관적인 안목으로 이루어진 학술지등급평가 결과가 미치게 될 부정적 기능에 우리는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학문 발전에도 적지 않은 방해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학술지가 좋은 학술지인가?’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답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학술지 평가는 몇 사람의 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술지에 실리는 연구물의 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급평가가 학문 육성의 걸림돌이 된다면, 차라리 그 작업을 중단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대신 학술지를 등재시키고, 등재학술지들을 지속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 오히려 학술지의 수준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학술지등급평가 작업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