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의 안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정면에 기획실 푯말이 보이고, 왼편이 이사장실, 오른쪽이 한숭동 학장실이다.
한숭동 학장(53)이 반가이 손을 내민다. 정돈된 책상 옆 벽면에는 갖가지 공문과 계획표들로 가득하다. 마
치 기획처(실)장 방을 잘못 찾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른바 실무 형이라고 합니다. 기획과 리포트 작성에 아직도 자신이 있어요. 아침 8시 처실장 회의를 시작으로 학교에 보통 밤 9시~10시까지 있어요. 새로운 제도들을 시행하다보니 할일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일이 매우 재미있고 보람 있습니다.”
그가 학장으로 취임한 것은 지난 2001년. 1998년 조교수 겸 학생생활상담 실장으로 임용된 지 불과 3년만이다. 기획조정실 제1팀장, 학무조정실장, 대덕대 학장 직무대리 등을 거쳐 초고속 승진을 거듭, 마침내 대덕대학의 경영자가 된 것이다.
“특별한 힘(?)이 있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사장님과 사적으로 특별한 관계도 아니고. 학장을 맡았을 때 어렵게 공부한 만큼 직계 제자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어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 대학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면 좀더 많은 제자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열심히 했고,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왔고 보람이 있었지요.”
그는 성균관대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83년부터 2년 동안 시간강사를 했다. 이후 37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네브라시카 주립대학에서 유학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 마침내 대덕대에 둥지를 튼 것이다.
“제가 대덕대에 부임한 뒤 가장 놀란 것은 우리 교수님들이 스스로를 비하 하는 것 이였어요. 의식부터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보직교수들을 중심으로 차량에 학교 스티커 붙이기 운동을 했지요. 지금은 모든 교직원들이 자신의 차에 스티커를 붙이고 다닙니다.”
한 학장의 이러한 노력은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꾸어 놓았다.
“사람은 아무리 못나도 최소한 2~3개 능력은 있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이중 하나만 골라서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경쟁력이 생기거든요. 집을 짓는데 기둥과 대들보가 중요하지만, 서까래도 있어야 집이 완성될 수 있어요. 보통의 수학능력을 가진 학생들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그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죠.”
인식의 변화가 이러난 뒤 그는 새롭게 도전한 것은 제도개혁. 기존 대학이 하지 않는,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여러 가지 제도들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는 대덕대학식 학사운영시스템이라 불리는 1년 3학기제도. 1년을 3학기로 나누고 학기당 최저 10학점, 최고 20학점을 신청할 수 있는 이 제도는 학기 당 12주 교육을 한다. 학기와 학기사이에는 2주간의 준비기간을 주고, 동계휴가(10주), 하계휴가(1주)도 있다. 한숭동 학장은 이 제도가 전문직업인 양성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과정 편성에 매우 적합한 제도라고 말했다.
“개강이라고, MT 간다고, 축제한다고, 시험 본다고 강의 안 합니다. 봄 가을학기 체제에서 16주 내지 15주 공부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11주~12주 밖에 안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 1년 중 5개월을 공부하고 7개월 노는 문화라는 말입니다.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이래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한 학장은 1년3학기제도의 경우 학점을 조기 취득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조기 졸업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남은 기간 부전공을 하거나 4년제 대학 편입준비 또는 유학준비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덕대가 이와 관련해 실시하고 있는 독특한 제도가 1학점 당 등록금제 실시다. 교양과목의 경우 1학점 당 6만3천 원 정도인 이 제도는 학생들이 불필요한 과목을 듣지 않아도 돼 경제적으로도 40~60 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고.
한 학장은 학점당 등록제가 학생은 물론 교수들에게도 긴장감을 줘 수업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또 학교입장에서도 졸업학점 취득 뒤 편입 반, 유학반 운영, 부전공 취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재정적으로는 20~30억 플러스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숭동 학장은 내년부터 이러한 제도를 바탕으로 취업 50%, 유학과 4년제 대학 편입 30%, 평생교육 20%로 대학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대학들의 가장 고민거리인 입학정원문제에 대해 물었다.
“우리 학교는 큰 문제없어요. 80% 정도에요. 산업체 전형을 포함하면 입학정원 100%를 달성했지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입학문제를 생각하면서 이런 자문을 하죠. 과연 대학이 대학을 운영하기 위해 교육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육을 하기 위해 대학을 운영 하는가?”
뜻밖의 답변이었다. 사실 대학사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있는 이들은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 현실 아닌가.
“각 교육기관은 설립과 동시에 사명과 목표가 있습니다. 전문대는 직업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따라서 전문대를 필요로 하는 학생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학벌주의 폐해로 전문대학을 안 가려고 합니다. 요즘 4년제 대학의 목표가 졸업생 취업률 100%라 합디다. 4년제 대학의 목표가 취업입니까, 학문탐구입니까.
대학을 운영하는 학장 총장 이사장 들은 자신의 대학 사명과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한숭동 학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지역의 한 전문대 학장으로서 감히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4년제 대학, 전문대학 구별 없이 모두 직업교육 기관화 한다면, 관련된 모든 정부 사업에도 구별 없이 참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특히 특성화 중점지원과 BK 21 사업에서도 전문대를 포함 시켜야 합니다.”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설립목적과 기능을 구분해놨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동일한 목표와 교육과정, 기능을 하고 있다면 정부의 각종 정책 사업 등의 기회에 있어서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학장은 교육의 내실화와 관련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현장교육 실질화 방안에 대해 구체적 제안을 했다.
“작년 12월 4일 전경련 보고서를 보면 얼굴을 못들 지경입니다. 전문대의 경우 진보된 기술을 배워서 현장 적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실제 실습은 모두 이론위주에요. 현장에서는 ‘제발 오지마라 도장찍어줄게’라고 합니다. 이래서는 경쟁력이 안 생깁니다.”
한 학장은 내실 있는 실습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국세청 재무부 등 정부부처 지자체 등 재정·행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체에 이득을 주어야 실습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학장은 대학도 이를 위해 등록금 중 1/3을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