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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30년 후의 대학
<홍성은· 명지대 국문3 · 바스타드 소드 1·2·3」저자>
어디에서나 흔히 찾을 수 있는 카페. 테이블 위의 유리잔의 커피가 찰랑거리며 은은한 향기를 내고 있다.

"늦잖아, 이런."

커피의 주인은 초조한 듯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계침이 미미한 기계음을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가리키는 시간은 2시 37분. 약속 시간으로부터 7분이나 더 된 시간이다. 그때, 카페의 문이 황급히 열렸다. 순간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물론 시계를 보던 그녀의 시선도. 그녀를 알아본 남자는 다른 손님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곧바로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미안, 늦었지?"

"늦었어. 그것도 7분이나!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아아, 정말로 미안해. 내 클론 녀석이 말을 안 들어서. 강의에 대신 나가달라고 했는데 꽉 막혀서 말을 들어먹어야지."

"응? 네 오늘 강의는 이 교수님 강의 아냐? 그 교수님은 클론 대리 출석은 왠만한 경우 아니면 안 봐주시잖아."

"아무렴 어때. 설마 들키기야 하겠어?"

그는 무책임하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떻게 된 놈인지... 으이구."

"그보다 네 클론은 어때? 영국에 갔다고 했던가?"

"그래, 어제도 이야기했는데, 강의 잘 받고 있대더라."

그녀의 클론은 영국의 런던 대학에 재학 중이다. 아무리 교통 시설이 발달하여 단시간만에 먼 거리까지 다녀올 수 있더라도 역시 텔레포트라도 하지 않는 한 지구 반대편을 매일 통학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클론을 대신 보내서 외국의 대학에서의 수업을 듣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롭지 않아? 클론을 외국에 보내뒀는데."

"하지만 런던 대학의 드루이드학은 꼭 듣고 싶었어. 어쩔 수 없잖아? 외로운 것 정도는 참아야지."

약 25년 전, 첫 인간 클론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것을 만든 자는 처음에는 도덕적으로 크게 비난받았지만, 클론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는 클론 기술이 실용화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클론에 대한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었다. 보장받을 수밖에 없다. 클론을 만든 인간은 클론과 정신적으로 이어지게 되어, 성욕을 제거한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서로에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작은 고통은 포함되지 않지만 커다란 고통은 공유하게 된다. 말 그대로 인간에게 있어 또 다른 자신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오리지널과 동등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권리를 클론들은 얻은 것이다.

"영국이라... 지구 반대편이군. 텔레파시가 가능하기는 해?"

"일단은. 하지만 역시 거리를 타는지 힘들어."

그리고 클론이 일반화되면서, 인간의 초능력이라는 것이 증명되기 시작했다. 타인과는 무리지만 자신의 클론과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교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텔레파시를 통한 대화는 물론, 이미지, 음악, 심지어 경험 그 자체를 교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서로의 정신력을 모아서 텔레키네시스라는 물리력도 행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인류의 클론으로 인한 정

신적 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동시에 기존에 오컬트라고 무시되던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재조명과 고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론과 과학 기준이었던 세계학계가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자, 클론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자. 오늘은 뭐하고 놀까?"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고혹적으로 말했다. 남자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 속에서 메모리칩을 꺼냈다.

"오늘은 이겨주지!"

"훗."

그녀는 대답 대신 테이블 밑에서 잭을 꺼내어 목 뒤에 연결했다. 남자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메모리 칩을 테이블 위의 단자에 연결하고 자신도 잭을 꽂았다.

○○○...

한편 대학에서는...

"윽!"

카페에서 놀고 있던 남자와 완전히 같은 얼굴의 남자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을 보며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어, 왜 그래?"

"오리지널 놈이 신경 접속 게임이라도 하고 있나봐. 녀석, 이런 건 좀 말하고 하지."

"그래? ...여자랑 하고 있는 거 아냐?"

"그럴테지. 그 녀석은 여자랑 잘 노니까. 요즘 또 사귀는 여자가 바뀐 모양이더라구."

"헤에... 윽, 교수님 들어오셨다. 너 괜찮아? 저 교수님은 클론 엄청 싫어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클론을 인간 이하의 동물로 취급하는 사람도 아직 세상에는 잔뜩 있다. 가치관의 차이라는 놈이라 쉽게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는 차라리 이 수업이 통신 교육이었다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전쯤에는 모든 대학 교육이 통신 교육으로 바뀌었었다. 넓고 무의미한 교정을 지닌 대학들은 모두 땅을 팔고 통신 교육 서비스에 투자했다. 교수들은 더 이상 수업에 나서지 않고 연구에 집중했으며,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내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학점을 땄었다. 이런 식의 교육 서비스에 익숙해지자 대학의 구분에 의미가 없어지고, 따라서 점차 대학들은 합병되어 가기 시작했다. OO대학에 다닌다, 는 말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그냥 대학에 다닌다, 고만 말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런 대학 행정에서 다시 지금의 형태로 돌아온 까닭은 크게 두개였다.

첫째는 해킹. 성적 해킹은 물론이고 어떤 강좌 자체가 해킹에 의해 폐강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것은 큰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둘째는... 어디든 인간은 소속되는 것을 원한다는 심리 때문이었다.

"자네! 자네!"

"엑?!"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교수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자네, 클론이군."

보통은 확인하지 않는 식별표를 본 모양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는 엄한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내 수업에 클론 따위는 들어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나! 나가게! 그리고 자네 주인이 오면 이 수업은 F라고 전해!"

이 교수는 신경질적으로 등을 돌렸다. 그는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강의실 문을 나섰다. 별로 화도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아, 들립니까. 주인님."

그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텔레파시였다. 저쪽의 응답이 전해져 왔다.

"무슨 일이야?! 바쁘다구! 으악! 옆, 옆구리를 찔렸다!"

"검술 시뮬레이션 게임 중이신가. 좋아, 어쨌든 할 말은 해야겠지? 너, 이 수업 짤렸다."

"으아악!!"

툭,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게임 속에서 죽어서 신경 접속이 끊기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텔레파시도 끊긴 것일 터이다. 그는 천천히 교정을 걸었다. 대학 교정이라는 것이 한번 없어지고 새로 생긴 것이라 건물은 아직 지은 지 10년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깨끗한 건물들 사이사이로 플랫 카드가 보였다.

"한총련 의장 김옥자를 차기 대통령으로... 인가. 그래, 곧 선거 기간이 다가오는군."

어차피 클론에게는 투표권은 없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총련이 정식 정당이 되어 젊은이들의 정치 세력이 된 것도, 그리고 현재 여당이 한총련인 것도. 그때, 텔레파시가 걸려왔다.

"미안, 화났어? 그 교수 엄청 신경질적이니까..."

어두웠던 기분이 사라진다. 어쨌든 이런 녀석인 것이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자신의 분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집을 향해 걸었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1-10-13 오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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