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민족의 재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할 것 같다. 우리와 같이 분단의 고통을 겪은 독일도 통일 후 14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서로 정신적으로는 통일이 되지 않았다고 자탄한다. 이는 법적 정치적 경제적 통일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정신적 화해 없이는 완전한 통일의 길이 멀다는 것을 잘 입증한다.
나는 며칠 전 중국 연길의 어느 학술대회에서 북에서 온 여러 명의 학자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난 적이 있다. 이틀간 숙식을 같이한 그 학술 대회에서 북한의 사회 과학원 소속의 학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학술 대회 후 만찬 석상에서 남북 학술 교류의 필요성에 관하여 그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들 역시 상당한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그들의 긍정적 태도가 어느 정도 반영 될지는 의문이지만 남북화해와 통일이라는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남북한의 학술 교류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이산가족의 만남과 북한 동포 돕기 등 경제적 지원이 남북간의 화해의 물꼬를 텄다면, 이제 문화적 학술적 교류를 통하여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고 나아가 민족적 화해와 민족의 동질성회복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남북한의 학술 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공통적인 관심 분야의 작은 문제부터 출발하여 점차 교류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남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데올로기성이 강하고 마찰이 우려되는 철학과 사회과학보다는 역사학이나 고고학등 민족 전통이나 자연 과학 분야에서의 학술 교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남북한은 일제의 위안부 문제, 약탈 문화재의 반환, 고구려사 문제 등 역사학 분야에서의 진지한 대화와 논의가 간헐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 사실이다. 역사학 분야는 일제하 역사에 대한 남북한의 공동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과학 기술 분야 특히 IT 분야는 북측의 발전 전략과 관련하여 관심이 많은 점에서 심도 있는 교류가 이루어 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4일에는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에서는 북측에서 9명의 역사학자가 참석한 ‘항일 민족 운동의 역사적 경험’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열렸고, 금년 8월초 평양에서의 제2차 한국학 학술대회에 남한의 200여명의 학자가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남북한의 학술 교류는 진지한 학술 대회이기 보다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 해소하고 남북의 학술 교류를 보다 정례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학술 교류 협력을 위한 공동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제 3국을 통하거나 비공식 접촉이나 개인적 친분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술 교류는 일회적이고 한시적이기 때문이다. 차기 남북한 장관급 회담에서는 남북한 학술 교류에 관한 문제가 정식 의제로 채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현재 한국의 학술 진흥재단과 북측의 민족 화해 협의회 간의 ‘남북 학술 교류 협력 관한 의향서’만 형식적으로 교환된 바 있어 실질적이고 공식적인 교류 협력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남북간의 다양한 대화의 통로가 마련되고 남북 군사 회담까지 두 차례 성사된 시점에서 남북 학술 교류 추진위(가칭)를 비롯한 추진 체계가 공동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남한의 교육 인적 자원부와 북한의 교육성이 상호 지원 할 때 남북 학술 교류는 탄력을 받고 제 괘도를 찾을 것이다.
지금처럼 비공식적 접촉이나 중국 등 제 3국을 통한 접촉은 부자연스럽고 경비도 많이 들고, 진지한 학술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단기적 필요에 따라 추진되는 남북의 학술 교류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제도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위한 남북한의 제도적 장치가 곧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