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교육정책의 혼란과 입시부정대란은 미래가 불투명한 한국교육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이렇게 난리들이지만 일단 대학에 들어가도 미래가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은 더 큰 문제다. 교육은 부실하고 대학경쟁력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엉킨 실타래 같은 것이 오늘날 우리교육이다. 입시제도와 대학교육은 밀접하게 얽혀있겠지만, 입시제도는 차치하고 대학교육만 보더라도 문제는 산적해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이다. 인구대비 대학생 비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인 우리나라가 대학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1984년에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대학생수가 2천5백명으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1996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당당히 1위로 올라섰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군,구 수는 모두 2백34개인데 대학의 수는 3백59개다.
기초자치단체당 평균 1.5개의 대학을 보유하고 있는 명실공히 대학공화국이라고 할만하다. 엄청난 사교육비나 입시과열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에 유학이나 해외연수비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재경부의 공식통계로 18억7천만 달러(2조2천억원)이라고 한다. 이런 수치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질의 측면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참여정부는 출범부터 일관되게 혁신주도형 경제를 주창해왔다. 9년째 마의 1만불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경제가 2만불 선진국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만불경제가 2만불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두배의 투자나 두배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에 기술, 제도, 문화의 총체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인 발전인데 이런 논리는 대학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양적인 측면에서 이미 교육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공룡이 돼버렸다. 한때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Big is beautiful'이라는 모토가 통했지만 이제 양적 팽창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빅이즈낫 뷰튜풀’이다. 이웃나라 중국은 인구 13억에 대학생수는 불과 150만 명에 불과하다. 또한 인구 2억8천의 미국에서 상위10개 대학이 배출하는 인력은 1만명이지만 우리나라는 서울대,연고대 등 이른바 SKY대학에서만 1만5천명의 졸업생을 내고 있다. 대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의 슬림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IMF이후 경제의 거품을 걷어냈듯 대학도 부피는 줄이고 질은 높이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교육은 교육받을 권리나 교육기회균등이라는 측면에서는 행복추구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재양성과 인력수급을 통한 국가경쟁력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간 원칙으로 온 평준화만으로는 국가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다. 교육평준화와 우수인력양성은 공존하기 힘들지만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아야만 한다. 이제 대학은 우수인력양성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떠안아야만 하고, 당국은 응당 이를 적극 지워해야 한다.
그랑제꼴이라는 엘리트교육제도로 경쟁력의 원천을 확보하고 있는 프랑스의 모델은 훌륭한 벤치마크모델이 될 수 있다. 프랑스는 대학교육과 그랑제꼴을 분리해 철저히 이원화시키고 있다. 대학에 있어서는 평준화와 교육기회균등을 내세우지만, 그랑제꼴의 경우는 철저한 소수정예와 전폭적 지원으로 일관하고 있다.
프랑스 최고의 명문 그랑제꼴 ‘에꼴 노르말’은 한해 정원이 100명 미만이고 이렇게 선발된 엘리트들은 입학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으며 공부를 한다. 이렇게 국가적인 지원을 통해 훈련된 인재만이 국가경쟁력의 기둥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이 체계적으로 잘 굴러가는 것은 프랑스 그랑제꼴 출신의 훈련받은 행정관료들때문이라는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