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10년으로 끝난다면 트로이 전쟁과 비슷하다. 빼앗긴 왕비 헬레네를 찾기 위해서 스파르타가 그리스 연합군으로 성밖에 천막 치고 싸운 것처럼 빼앗긴 교수직을 찾기 위해서 김민수가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본부 건물 밖에 천막 치고 싸운 것이 꼭 같다. 그리고 그동안의 공방 전개도 때로는 트로이 전쟁만큼이나 흥미로운 서사적 흥미를 돋군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벌어진 이 트로이 전쟁이 결말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징후는 우리의 역사적 배경과 관계가 있다.
도대체 이 따위 사건이 10년 가까이나 시간을 끌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김민수 교수가 쫓겨난 돌발 사태의 원인을 추적해 보면 선배 교수들의 친일 경력을 건드린 불경죄 밖에는 다른 이유가 없어 보인다. 미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였던 김민수는 심포지엄에서 초대학장 장발 교수와 장우성 노수현 교수의 친일 경력을 논문 각주란에 작게 적었고 그후 이것을 ‘빼라’ ‘못뺀다’ ‘해명하라’ 등으로 싸우다가 목이 잘렸다.
재임명 심사 당시의 연구 실적 등(충족조건의 4배 정도로 주장되고 있음)으로 봐서 이 같은 탈락조치의 부당성은 너무도 명백한데 그래도 완강하게 이 트로이성이 버틴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재로 재임명제도가 있다. 군사정권은 이를 교수들 길들이는 협박용으로 써 먹었고, 서울대 미대는 제 식구 관리용으로 써먹었다.
둘째는 이 트로이성의 수호가 친일 수호와도 상징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김민수가 언급한 장발을 비롯한 친일 교수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출발해 온 대학이며 교문 밖도 친일 세력들이 활개쳐 온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성은 난공불락이었다.
셋째 조건은 그들의 배타적 집단적 이기주의다.
이 세 가지 중 가장 큰 비중은 친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김민수 사건의 본질은 친일과의 더러운 전쟁이다.
그런데 이렇게 완강하던 성이 거의 10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무너질 징조를 보이고 있다. 역사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 세력이 수세로 밀리며 ‘장발족’의 후예를 계속 봐 주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끝나더라도 아직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역사는 많이 바뀌었지만 충성도가 교수채용 최우선 순위가 되고 그들만을 위한 배타적 이기주의가 아직 팔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살아 있는 한 그 대학은 일류 교수가 발을 붙일 수 없다. 서울대에는 황우석을 비롯한 세계적인 일류 교수도 있지만 미대같은 대학이 있는 한 서울대는 우물 안 개구리요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는 어렵다.
이렇게 되면 가장 불쌍한 것은 학생들이다. 논문 한편을 써도 선배 교수의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2류 교수 밑에 있어야 한다. 물론 그림의 천재라면 일류 교수 없이 혼자서도 갈 길을 밟아 가지만 그 길은 험하다. 일류 교수의 지도를 못 받아서가 아니다. 교수 말만 잘 듣는 충직한 아류가 안 되고 쥐뿔 나게 독창성이나 함부로 발휘하면 십중팔구 미운 오리새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백조가 되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수년전에 미대 수석 졸업생이 대학원을 지원했다가 부당하게 탈락되고 부모에 의해서 원인이 밝혀져 항의가 일고 진학을 했다. 그렇지만 석사 졸업 때까지 받아야 했던 수모와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미대만의 일이고 또 서울대만의 일일까?
하바드대는 학문의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서 본대학출신의 직접 채용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학문의 근친상간만이 문제가 아니다. 맹목적으로 충직한 도제만으로 집안 식구를 조직하기 위해서 2류교수 집단을 만들고 그 후에라도 이단자는 내쫓는 예를 보인 것이 김민수 사건이다.
바깥 세상은 많이 바뀌고 있다. 우리 대학도 알을 깨는 아픔으로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