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면 우리 대학들이 어김없이 진통을 겪고 있는 등록금 논쟁에 시사점을 던져 줄 중요한 판결이 지난 1월 26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내려졌다.
제6차 개정을 통하여 규정한 고등교육기본법(HRG, 2002. 8. 8. 개정) 제27조 제3항과 제41조가 기본법(GG) 제72조 제2항과 관련된 제75조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판결이다(BVerfG, 2 BvF 1/03 vom 26. 1. 2005).
무료로 첫 번째 학부과정을 마칠 수 있게 한 고등교육기본법 제27조 제3항의 규정은 교육에 관한 연방의 입법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무효라고 본 것이다.
“법원이 등록금 부과 허용 여부에 대하여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며, 단지 2002년 적록 연립정권이 수업료 금지 규정을 도입한 위의 연방법(HRG)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라고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하쎄머(Hassemer) 재판장의 보충적 설명이 있었다지만, 이제 독일에서 대학 공부를 공짜로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헌법재판의 소를 제기했던 바덴뷔르템베르크를 비롯한 기민당, 기사당 집권의 5개 주정부들은 벌써 등록금 책정액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이웃 주와 자기 주 대학들의 눈치를 살피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연방과 마찬가지로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베를린에서도 이 판결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다른 주가 등록금을 부과하면 베를린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번 판결로 개별 주는 등록금징수를 위한 근거 법규 제정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체로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 도입할 것으로 보이나, 일부 주에서는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등록금 1천~1천5백유로 부담 불가피
등록금 액수를 어느 수준으로 정할 것인가도 관심사다. 생애 첫 대학교육일 경우 초기 단계에서는 5백유로에서 시작할 것이나, 독일대학총장협회 개트겐스(Gaethgens) 회장은 학기당 1천유로, 독일경제연구소의 찜머만(Zimmermann) 소장은 학기당 2천5백유로를 각각 주장하는데, 대략 1천~1천5백유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일단 도입이 되면 액수는 현실적 수요에 맞춰 더욱 올라갈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분위기다.
이미 지난해 6월 수업료부과를 공식적으로 촉구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는 독일대학총장협회(HRK)는 즉각 이 판결을 반기며, 수업료 부과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첫째, 수업료는 오직 수업의 질 개선에 가시적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내용이 법제화되어야 한다.
둘째, 개별 주는 단지 수업료 부과 및 그것을 위한 수업료규정의 제정 권한을 대학에 부여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며, 이때 가능하면 개별 주들이 동일한 수준의 등록금액 상한선을 정하도록 하고, 개별 대학에는 전공에 따라 차등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하는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셋째, 관련 규정은 대학의 경쟁력이 주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미칠 수 있도록 호환적이어야 하고,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제한받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 판결로 연방 정부가 곤혹스러운 것은 패소로 인한 정치적 부담과 함께 다음과 같은 점들이 문제점으로 대두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우선 본질적 문제로서 사회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국가의 기본이념에 비추어 볼 때, 사회 빈곤층이 이로 인하여 대물림되는 것은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된다. 독일의 대학 진학률이 30% 수준으로 경쟁상대 국가에 비하여 염려스러울 정도로 낮아 국가적 고민거리인데,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장학금과 융자(BAf?G)를 받아서 학업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까지 부과되면 학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2004년말 학생수가 2백만명을 넘어설 때 교육 당국이 크게 고무되었던 사실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전체 학생의 11.6%(2001)를 차지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된다고 본다.
최근까지도 개별 주의 교육부장관들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학생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설사 외국인이라도 독일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독일에서 취업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주는 것이 독일에 결과적으로 보탬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대학생들, 반대 목소리 드높아
학생들 입장에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연일 등록금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옷 사 입을 돈이 없어서 벗는다며 나체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예컨대 한 학생이 정규 8학기(48개월)동안 매월 6백50유로씩 대출을 받아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출하며 학업을 마칠 경우 부채가 총 3만1천2백유로가 되는데, 이율 5.1%에 따른 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서는 졸업 후 15년 동안 매월 2백48유로, 아니면 25년 동안 1백84유로씩을 갚아야 한다.
가뜩이나 결혼 기피와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게 이러한 부담은 악몽일 수밖에 없어, 학생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연방정부가 지난 2002년에 앞서와 같은 법을 제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법에는 등록금 부과금지규정을 두면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개별 주가 등록금을 거둘 수 있는 예외 규정을 함께 두고 있었고, 실제로도 일부 주에서는 이 규정에 의거 등록금을 부과하고 있었다.
예컨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정규 이수학기를 마치고 다시 4학기를 초과하는 늦깎이 학생들에게 학기당 5백11유로를 부과하였고, 함부르크, 니더작센 등도 이런 학생에게 학기당 5백유로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헤센주는 5백~9백유로까지 징수하였다. 물론 바이에른, 베를린 등 7개주는 여전히 무료인 주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이유를 지극히 형식적인 법 논리를 논거로 들이댔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독일 고등교육의 상황을 고려하여 내린 정책적 판단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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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업료 추가 부과에 반발, 시위에 나선 독일 대학생들 |
대학수와 학생수 증가에 따라 일정 수준 교육과 연구의 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았는데, 심지어 2003년에는 베를린의 3개 대학이 신입생 모집 중단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한 바 있다.
2000년 기준 독일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만8백98달러 수준(미국 2만4백58달러, 한국 6천1백18달러)으로 OECD 평균 11,109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드러내놓고 얘기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교육 예산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여건은 갈수록 힘들어져 심지어 독일대학연맹(Deutscher Hochschulverband)은 교수 1인당 학생수가 실제로는 58명이라는 보고를 내놓기도 했다(2004.9.1). 이런 상황에서 정규 학기를 마칠 수 있는데도 졸업을 연기하는 것이 대학가의 관행이 되어버린 사정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했다.
또한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대학평가 결과는 상아탑에 안주해온 독일 대학의 전모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대학평가인정위원회(Akkreditierungsrat)가 2004. 12월까지 3백71개 대학과 3백45개 전문대학의 7백16개 전공 학문분야를 평가하였는데, 이 중 6백14개의 조건부 인정, 27개의 불인정이라는 의외의 결과는 전체 대학구성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적인 평판도 가혹했다. 과거 훔볼트 이래 대학은 독일이 선도하는 것처럼 인식되었으나, 미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에 현저히 떨어지는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 2003년 보고에서는 독일이 23위로 뒤쳐져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경쟁과 자극을 통하여 독일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외침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독일 대학의 사정이 판결에 적어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경제적 장애는 투쟁 대상 아니다
이상의 독일 등록금 징수 논쟁과정에서 우리 문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시사점을 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학 자치라는 헌법적 가치는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만큼 충분한 재정적 지원이 가능해야 그 본래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이념적 문제는 장애가 될 수 없지만 경제적 장애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사실이다.
둘째, 고등교육이 국가 발전의 초석이라는 사실을 긍정한다면 급변하고 있는 학문분야 발전 추세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1위에 밀린 2위는 곧 퇴출을 의미한다. 과거의 기술은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셋째, 한국의 고등교육 경쟁력을 국제적 기준에서 비교해 볼 경우 지나치게 뒤져 있다는 사실이다. OECD 교육비 비교, IMD 비교, 특히 2002년 12월 전경련이 발표한 자료는 더욱 충격적이어서 대학이 양성한 인재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겨우 26% 수준에 불과하므로 나머지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다시 교육을 시켜 현장에 투입해야 하므로 수조원에 달하는 신입교육 비용이 소요된다는 부끄러운 얘기도 있다.
넷째, 교육예산 확보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공급과잉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산학연 협력, 대학기업 육성, 수익사업의 범위 확대, 예산회계의 자율성 신장, 세제 지원, 기타 행·재정 지원, 기여입학에 대한 전향적 검토 등 국가의 거시적 차원의 방향 설정과 대학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섯째는 이러한 노력에도 한계가 있는바, 2004년 11월 국회의원 51명의 발의로 현재 국회에 제안되어 있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제정을 통해, 현재 GDP 0.43%에 불과한 고등교육예산을 현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고 OECD 평균치인 1%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학 투자는 미래 위한 불가결한 대안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매년 우리 대학가에는 등록금 인상폭 결정을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유능한 총장이면 학생들과 협상을 잘 해서 원만하게 학기가 개시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학사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보도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인상 폭이 두자리 수를 넘느냐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싶다. 세계무대에서 국력 12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금의 교육비는 두자리 수를 다소 넘었다 해도 국제적 수준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국공립대의 경우는 카이스트의 러플린 총장 얘기처럼 등록금 의존율을 높이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볼 수 있다. 고등교육의 사학의존율이 84%인 나라에서 사학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이 4%인 상황은 무책임한 국가 운영의 상징이다.
싸구려 고등교육과 학기 초 혼란을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등록금 인상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국가가 정면으로 이 문제를 받아들이기 바란다.
독일의 등록금제도 도입 논란은 교육재정 확보의 문제도 있었지만, 장기 수학자들에게 자극을 주어 대학가 전반에 경쟁의식을 고취시키려는 것이 주된 배경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육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대학에 대한 투자는 한국인의 미래를 열어줄 불가결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