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할 줄 모른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주관적인 감정에 휘둘린다.때문에 사회의 성숙정도는‘계몽’혹은‘이성적 분별’이 좌우한다 해도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올해의 경우 이러한 고민에 근거해‘교양도서 10선’을 꾸몄다. 논쟁적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최근작 위주로 모았다. 인물 선정에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보다는, 그들의 글쓰기가 낳은 사회적 이슈에 더 방점을 두어 이른바‘시대의 논객’10인을 가렸다. 아울러 한국사회의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한 통찰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도록 책선정에 고심했다.
‘현실과 지향’‘경험의 서술’대립
■ 복거일「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 서준식「서준식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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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야간비행(좌), 들린아침(우) |
한국 사회를 향해 한 사람은 자유를 부르짖고, 또 한 사람은 인권을 요구한다. 한 사람은 반공·보수주의자를 자처하고, 또 한 사람은 투사라는 레테르가 붙어 있다.
영어 공용론으로‘과다하게’유명세를 치른 복거일이 이번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총체적인 사회정황을 근거로 친일 행위의 평가와 단죄에 대한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것이 친일파를 본격‘변호’하고 나선 것인지 아니면, ‘친일파’라는 기존의 통념에 문제
를 제기한 것인지는 여지를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심하지 않는 자를 의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 71년 이른바‘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돼 88년 비전향 좌익수 최초로 풀려난 서준식은‘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을 소박하게 글로 옮겼다.
복거일 사유의 수원지는 그의 주저‘현실과 지향’에 있다면, 서준식은 철저하게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시대 반영한‘진실 vs 교양’의 글잔치
■ 리영희「반세기의 신화」
■ 운영「신세기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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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삼인(좌), 산처럼(우) |
두 사람은‘살아 있는 신화’다. 두 사람의 이력엔 공히 대학 교수라는 직함이 들어 있지만 자의 반 타의 반 들 두 사람은 기자로서 더 유명하다. 아니, 각자의 이름이 들어간‘칼럼’이 더 유명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리영희는 자신을 기자라고 못박는다. 그리고 기자는‘사실’만을 쓰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지극히 무미건조해야 하며 가치판단도 없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있는 사실만을 갖고 기사를 쓰는‘팩트주의자’가 그의 지향인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70년대‘있는 사실만을 갖고 기사를 쓴’일간지들은 죄다 외면을 받았던 반면「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같은 책은 30년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울림을 간직한 책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반세기의 신화」가 그 이유를 다시 설명한다. 그것은 그의 글쓰기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강준만이 묶은「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나 김만수의「리영희-살아 있는 신화」가‘참고서’구실을 톡톡히 한다.
정운영은 이와 대조적이다. 그의 글쓰기는 전혀 무미 건조하지 않으며 가치판단 또한 명확하다. 그는 풍부한‘교양’을 바탕으로 읽는 이를 간단히 압도해 버린다.
산문 문장의 화사함까지도 한 단계 격상시켰다. 90년대 벽두에 선보인「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경제학을 위한 변명」등 뛰어난 저작들은 시대의 코드 마저도 정확하게 읽어낸 셈이다. 「신세기 랩소디」에서도 그는 9·11 테러를 21세기의 기점으로 잡고 이 신세기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현직 언론인들의‘아웃사이더’이야기
■ 홍세화「빨간 신호등」
■ 고종석「서얼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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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한겨레신문사(좌), 개마고원(우) |
두 사람은 닮은꼴이다. 우선 현직 언론인이라는 것에서 그렇다. 아울러 뛰어난 글 솜씨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무엇보다 이 둘을 굳건히‘연대’하게 만드는 것은 공히‘아웃사이더’라는 점 때문이다.
홍세화는 이른바‘남민전 사건’으로 20여년 이방인 생활을 했다. 고종석은‘전라도 원적자’라는 태생 때문에 스스로를‘적자’가 아닌‘서자’로 여기며 살아왔다.‘톨레랑스’라는 유행어와 함께 홍세화를 단번에‘베스트셀러 작가’반열에 올려놓은「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고종석은 그의 책에 항변이라도 하듯 아예‘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는 부제까지 달아뒀다. ‘사회주의자’를 옹호하는‘반공주의자’라니,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채로운 한 쌍이다. 아울러 바람직한 한 쌍이기도 하다.
‘교수님 철학자’들의 사회비판
■ 강준만「대중문화의 겉과 속」
■ 이진경「철학과 굴뚝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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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인물과 사상사(좌), 그린비(우) |
만일 철학자의 임무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말이 유효하다면 강준만이야말로 90년대의 진짜 철학자인 셈이다.
‘인물과 사상’시리즈를 통한 그의 거침없는 실명 비판은‘전투적 글쓰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반면「대중문화의 겉과 속」은 그의 주특기인‘인물평’에서 일정 정도 비껴나 있다. 하지만 그 특유의 글쓰기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94년의 초판이 99년 전면 개정판으로, 그리고 2003년 속편격인「대중문화의겉과 속Ⅱ」까지로 그 볼륨이 늘어났다.
철학자라는 호칭은 이진경에게도 어울린다. 87년 그 격동의 시대에「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을펴내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94년 다시‘철굴’로 지칭된「철학과 굴뚝청소부」와 2002년‘철굴’개정증보판을 발표해 세인의 이목을 모았다. 철학자의 임무가 대학 강단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교수님’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본 역사의 참모습
■ 한홍구「대한민국사」
■ 박노자「나를 배반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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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한겨레신문사(좌), 인물과 사상사(우) |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이같은 지적은 특정 사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벽안의 젊은 학자 박노자가 소개하는‘한국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낯을 붉히게 만든다. 그의 책 앞에서는 우리의 역사공부가 소극적이지 않음을, 연대기 몇 장 암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음을 증명할 재간이 없다.
그나마 한홍구가 진행하고 있는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일련의 작업이 우리를 위안케 한다. 시사주간지에‘역사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그는‘지루하고 재미없는’역사를 일순간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그의 안내를 따라 좇아가다 보면 다음과 같은 경구를 만나게 된다. “이성의 최고 승리는 그 자신의 정당성마저도 회의하는 일이다.”
이승호 기자 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