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행정수도 위헌판결과 이어 발표된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 이후 날카롭게 대치했던 전선이 허물어지고 있는 듯해서 못내 아쉬운 마음까지 든다. 특목고 입시 경쟁이 다소 완화되었다는 소식에 일부에서는 바람직한 방향이 잡혀나갔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새 대입제도 개선안이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헌법상의 평등권을 위배한다고 헌법 소원을 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부끄러운 사실은 교육학자 들 중에 어느 하나도 이 상황에서 시원스럽지는 못하지만 솔직한 진단 한 가닥도 안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다 분명히 고교등급제는 있었다!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확신에 찬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대로 가다가는 서로 다칠까 싶어 그냥 슬그머니 칼을 거두고 휴전에 들어가 버렸다. 아직 칼을 거둘 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고교등급제 파문은 어디까지나 파문이요 스캔들이었다.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될 추문이었다. 누가 도대체 이 돌뿌리를 감춰 놓았었을까? 그들은 중세 흑암기에 권세를 부렸던 마녀사냥꾼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있지도 않는 마녀를 잡기에 혈안이 되었던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이 잡아서 불태운 자들은 바로 우리들의 친구요 형제자매인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고발장을 읽어보자. “돈에 눈이 멀고 교육이 무언지도 모르고 권세자들과 부자들 끼리끼리 살고 싶은 일부 몇몇 도덕불감증에 걸린 대학들이 아주 못된 짓을 했다 ! 특히나 이른바 최고 교육기관이라는 대학들이 국영수 시험점수만을 교육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얼마나 한심하고 무식한가?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돈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 한계에 다다른 대학의 재정난으로 인해 기여입학제라는 악수마저도 두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교육이 무언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관한 최고의 전통과 경험을 축적해 온 한국교육의 지평에서 국영수 성적은 최소한의 출발점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끼리끼리 살자고 하는 뜻이 아니라 그러지 않고서는 그나마 옛날에는 가끔 있었던 개천의 용을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서 덮지 말고 보다 본격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마녀사냥꾼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의 대학입시가 어떻게 치루어지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어째서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한국학생들이 입학한 일은 대서특필하면서 국내의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일은 감추려하는지도 물어보아야 한다.
한 가지만 사실을 얘기하면 미국의 대학들은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매우 중요한 전형자료로 삼는다. 그렇지만 미국의 고등학교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 학교 졸업생들의 수능 성적 결과를 해마다 공개한다. 몇 명의 학생들이 어느 어느 과목에서 몇 점을 받았으며 전체 순위는 얼마인가를 밝힌다. 미국의 대학들은 그러한 고등학교의 성적들을 지원자 선별 기준의 하나로 삼는다. 미국이야말로 정말 고교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29일 대전대학교에서 열린 교육학회 연차대회에서 김기석 교수는 참으로 용기를 내어 혜안이 있는 발표를 했다. 정범모와 브라멜드와 프레이리와 같은 교육학의 대 석학들은 교육을 통한 사회발전과 정의실현을 이론화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교육은 사회 제 부문과 서로 조금씩 역할을 나누어 조금만 할 수 있을 뿐이지 사회를 뿌리부터 뜯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가 할 수 없는 일을 교육에 책임은 전가하는 것이며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교육자들은 결국 교육을 팔아먹고 학교로부터 쫓겨나고 말 것이다. 이제는 하루 속히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지금 어느 만큼 하고 있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 선생님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연구하는 참다운 교육학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