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은 얼마 안 있어 온 사회가 가게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한 사회의 미래는 그 사회의 대학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대학은 무엇보다도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가 있는 곳이며 게다가 새로운 지식과 그 해석이 만들어지고, 미래의 생활 방식이 거기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공기와 같은 바, 특별한 용기(容器)에 따로 밀폐되지 않은 한 세계의 공기는 모두 하나로 통해 있다. 지식도 그와 같이 점점 온 세계의 것이 하나로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대학도 그렇게 되어 갈 수 밖에 없다. 특히 인터넷으로 연결된 지식화·정보화·세계화가 그것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사실은 두려워 할 도전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힘도 이 진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 진화를 역행하면 그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라도 멸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대학은 더 좋은 학생과 교수를 뽑으려고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학생과 교수도 더 나은 대학에 가려고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대학, 교수, 학생, 이 세 가지 요소의 질(質)은 독립변수이자 종속변수다. 좋은 대학에 좋은 교수와 좋은 학생이 모이는가 하면 좋은 교수와 좋은 학생이 있어야 좋은 대학이 될 수 있다.
이번 일본 여행 단원은 전부 13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7명이 대학 교수(총장, 학장, 이사장 포함)였다. 우리는 그 때 게이오대 후지자와 쇼난 캠퍼스로 이동 중이었는데 일행 가운데 어떤 분이 갑자기 성낙인 서울대 법과대학장에게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찮던데 정작 없어지면 성 학장도 실업자가 될 판이라 걱정스럽다”고 농담을 던지자 버스 안이 웃음판이 되었다. 그 후에도 이 농담은 여행 중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 웃음은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는 불가능의 해학(諧謔)과 안도감 속에서 터진 것이겠으나 나는 그 속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한국 사회는 ‘주인’이 쫓겨나거나 ‘존재’가 통째로 망하는 권력 대이동의 집채 같은 물결 속에 빠져 들어 있다. 으스스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던 것이 차례로 현실이 되었고 안도감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거의 모든 주인은 기득권을 누리는 자로, 거의 모든 존재는 기성권력 조직으로 낙인찍히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수월성(秀越性)이 상생(相生) 아닌 상극(相剋)을 도모하는 악(惡)의 기득 권력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런 수월성의 주인은 그 수월성을 내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보수 꼴통’으로 낙인찍는 것이 전염병처럼 번져 있다. 그 바람에 미래의 수월성의 등장에 대해서도 저주 의식(儀式)의 굿판이 심지어 교육자 단체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의 문제는 지금보다 더 수월(秀越)한 교수, 학생, 대학이 아니라는 점에 있지 너무 수월한 것에 있지 않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대학이 그러하다. 서울대가 수월을 독점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좌파적 모험주의의 극치일 것이다.
교육은 피교육자의 미래를 지금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평균을 상승시키고 수월을 북돋워야 한다. 평균과 수월은 어느 것도 놓쳐서는 안 되는, 특히 대학 교육이라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두 마리의 토끼다.
국내에서 수월의 경쟁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게 수월을 뺏기게 된다. 서울대가 만년 최고 대학 자리에서 물러나는 축하할 만한 오직 한 가지 방식은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다른 대학들이 그 자리를 뺏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