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또 하나는, 등대도 없고 나침판도 없이 안개 속을 헤매는 배처럼 올바른 방향감각도 없이 항해하던 대학을 의미한다.
한국대학신문이 창간되던 1987년의 대학과 그 시대적 상황이 이런 것이었다.
물론 한국대학신문이라는 대학 전문 언론 매체 없이도 그 때까지는 대학이 저마다 목표를 향해서 잘 달려 나가고 있었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8·15후부터 대학들이 창립되고 성장해 온 과정을 보면 그것은 다분히 정상궤도를 이탈한 경우가 많았다.
사학들은 국민들의 뜨거운 향학열을 담보로 하는 부정입학과 졸업장 남발로 수십년간 높이 솟은 우골탑을 자랑하며 진정한 학문의 전당 구실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사학의 운영자들은 부를 축적하고 황제처럼 학생과 교직원들 위에 군림하는 한편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학생과 교수들을 가혹하게 몰아내고 독재정권의 부당한 학원탄압에 동조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대학신문이 창간되던 시기에는 대학의 비리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잔혹한 군사독재권력의 횡포 속에서 최고 지성인들의 집단인 대학의 자존심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대학신문은 이 나라 유일의 대학 정론지로서 푸른 깃발을 올리고 전국대학으로 ‘정론’의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안개 속을 항해하고 있는 우리들의 좌표는 무엇인지,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은 무엇인지, 그 사명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변신해야 하는지 등 한국대학신문은 나라사랑 대학사랑의 뜨거운 정열과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용기로 사명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은 험난했다. 때로는 너무도 힘겨운 시련을 겪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전진과 도약은 지속되었다.
한국대학신문은 대학 현장에 문자방송 시스템을 구축해서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를 즉각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선도적으로 UNN TV 대학 방송국을 개국하고 차세대 인터넷 미디어인 ‘인키’를 전국 대학 등에서 운영하기 시작하며 언론 매체로서의 첨단적 기능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개발해 나갔다.
그리고 끊임없이 학술심포지엄 등을 통해 전국 또는 외국석학들의 지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나갔다. 일제말 암흑기의 민족시인 윤동주의 처형장 후쿠오카에 가서 최초로 대규 추모제를 열었고 도시샤대학에서 심포지엄을 열며 국제적 관심을 모은 것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길을 걷던 그를 통해서 대학인의 참된 길을 찾고 지성인의 가치 있는 삶의 철학을 제시해 보려던 문화행사의 하나였다.
이런 일들은 한국대학신문이 본지 발행에 최선을 다해 오면서 대학을 위해 더 많은 애정을 기울여 보려 했던 많은 일들 중 일부에 속한다.
그리고 이밖에도 할 일은 산적해 있다. 오늘의 대학 문제를 한국대학신문이 혼자 안고 고민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 될 일도 아니지만 전국 대학과 교육행정기관에 기자를 파견하고 현장 취재로 최대한 모든 정보를 축적하고 분석해온 유일한 기구가 한국대학신문인 이상 대학의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알고 고민하고 진실을 증언하고 해결책을 찾자고 나서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한국대학신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행히 이를 고민하는 소리의 크기에 상관없이 한국대학신문이 그동안 이만큼 지속적 성장을 거듭해온 것은 사원들의 독자적 노력만이 아니라 대학의 정책 담당자들이나 많은 기업들까지 이 신문의 존재가치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고 성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대학신문은 앞으로도 이 같은 관심 속에서 더욱 뜻 깊은 사명을 다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