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본지는 과학기술부·과학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사이언스 코리아, STS에서 길을 찾는다’는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과학기술의 학문적 접근이자 뉴패러다임을 의미하는 STS를 통해 과학기술강국을 향한 새로운 길과 해법을 찾고자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
한양대에 재학하고 있는 최민관군(사회1)은 이번 학기에 수강신청을 하면서 재미있는 과목하나를 발견했다. 교양필수로 지정돼있는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목이었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이공계 관련 과목을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의아했지만 과학기술을 과학적 측면이 아닌 철학적 측면에서 이해한다는 면에서 최 군은 “재미있는 수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약어인 STS는 과학기술학 또는 과학학으로 번역된다.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기술을 철학은 물론 사회학, 역사학, 문화학 등 타 학문과 연계시켜 연구하고 이해하는 학문이 바로 STS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 서유럽 등 과학기술강국으로 불리는 국가에서는 STS의 제도화가 상당 부분 진척됐다.
STS의 등장배경과 의미
최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래직업에 대한 조사를 하면 과학자라는 답변은 찾아보기 어렵다. 불과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장래직업 순위 상위에 랭크되던 과학자는 어느덧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반영한 상징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자리매김한 과학기술은 세계대전 등을 통해 인류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관심의 대상에서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이공계 위기, 즉 과학기술 위기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의 외면과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과학기술만의 아집과 독단을 버리고 과학기술을 사회 속에서 이해하자는 움직임이 학계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곧 과학기술과 철학·역사학·사회학·문화학 등을 상호 연계시킨 학문, 즉 STS라는 학문을 탄생시켰으며 STS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연구 분야로서 발전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학)는 “STS는 과학기술을 사회 속에서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라면서 “모든 STS 연구들은 과학기술의 본질과 속성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STS의 연구분야와 기여도
“과학과 철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그렇게 분리돼 있거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이 있어왔다. 철학은 과학과 만남으로서 과학의 한계를 지적해주고 과학은 철학에게 경험 세계에 대한 내용을 제공해줘 철학이 사변으로 흘러 편견과 독단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 김유신 부산대 교수(전자전기정보통신공학)
STS가 다루는 분야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과학기술을 근간으로 모든 학문을 상호 연계할 수 있는 개념이 STS다. 김 교수의 지적처럼 과학과 철학이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STS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다루는 과학기술사,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를 돕는 과학기술철학 또는 과학철학,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다루는 과학기술사회학, 과학기술을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과학기술문화학, 과학기술의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는 과학기술정책학 등은 모두 STS에서 연구하는 대표적 분야들이다. 또 인간복제, 핵폐기물처리장, 유전자 조작 등의 사회 문제도 STS에서 다루는 것들이다.
STS는 앞서도 설명했듯이 과학기술과 타 학문과의 연계를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의 위기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개입, 과학기술을 통한 해법을 찾으려는 과학기술사회학이나 생활 속의 과학을 추구하는 과학기술문화학, 국민소득2만불시대의 초석을 다지는 과학기술정책학 등은 STS의 주요한 사회적 기능으로 꼽힌다.
실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디지털 전환기의 후발국 기술추격 패턴 분석: 디지 털 TV 사례’, ‘한국 공공부문 과학기술활동의 특성과 변화: 탈추격체제로의 전환을 중심으로’, ‘신기술의 사회·윤리적 논쟁에 관한 정책네트워크분석’ 등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과학기술의 정책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이문규 전북대 과학학과 학과장은 “STS는 과학의 본질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과학의 사회 문화적 측면에 대한 이해를 얻도록 한다”며 “과학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영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발전이 국가발전에 어떻게 직결돼 있는지와 효율적인 국가발전을 위한 과학정책의 수립에 대한 이해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STS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STS는 현재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서유럽 등에 비하면 초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 명문 사립대와 주립대 대학원에는 독립된 교수진을 갖춘 STS 관련 학과들이 설치돼 있다. 또 미국 과학사학회와 과학사회학회는 매년 1천명이 넘는 대규모 학회를 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STS 연구소가 있다. 또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과학기술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소장한 ‘아카이브(기록보관소)’를 두고 있어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분분의 STS 관련 수업은 고려대, 서울대, 한양대 등 일부 대학원에서 협동과정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강국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홍성욱 교수는 “협동과정이라 해도 전임교수를 두지 않고 기존 학과에 있는 교수들이 시간을 내 강의를 하고 있다”며 “국가나 학교의 지원도 전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995년 전북대에 과학학과가 신설돼 우리나라의 STS 제도화를 위한 초석이 다져졌다는 점이다. 전북대 과학학과에서는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과학정책학, 과학경제학, 과학경영학, 과학심리학 등 광범위한 과학에 대한 학문을 연구하고 있다. 또 졸업생들은 현재 과학기술관련 단체는 물론 정부기관, 민간기업, 학계 등에 이르기까지 과학전문가가 필요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STS의 중요성을 공감한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동아시아 4개국은 동아시아STS학회를 구성, 매년 학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에서 학회가 개최됐으며 올해에는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중국 심양에서 학회가 열렸다.
과학기술의 뉴패러다임인 STS, 아직 우리나라는 초보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뒷받침된다면 과학기술강국으로의 길을 STS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별취재팀 = 송찬영 차장, 윤지은·김은영·정성민·이현준 기자 / 사진 : 한명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