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는 관계로 이리저리 알고 지내는 언론인들이 적지 않은 필자가 개인적 친분을 넘어 마음한구석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언론인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버린 도청 테이프 문건에 대해 L형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나라 언론과 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번 사건은 매우 충격적임에 분명하다.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것도 불법 도청의 피해자로 자처하던 문민정부 하에서 있었다는 것은 분명 충격이다.
또 그것이 유출되고 보도 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 최고 정보기관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관련자들의 범죄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벌어진 입을 다물 수없다.
보도 과정 뿐 아니라 알려진 도청 내용 또한 놀라운 것은 마찬가지다. 흡사 몰카 포르노 테이프 같은 도청자료 내용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길 정도로 파괴적인 것이었다.
정경언(政經言) 유착의 개연성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이미 인지하고 있던 바이나 그 것을 이런 방식으로 확인하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언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X 파일에 등장하는 그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기보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 까지 이르렀나 하는 참담함과 자괴감이 앞선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임을 알기에 이번일이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정론직필을 위해 고민하는 참 언론인의 모습을 가진 L형이 몸담고 있는 언론사가 관련된 일이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고쳐가며 변화해 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미 상자의 뚜껑은 열렸다. 없었던 일인 것처럼 덮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이미 언론과 권력 그리고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가 큰 상처를 입은 상황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각 각론별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나서 누가 정죄되어야 할지에 대해 나름의 생각들을 내 놓고 있다. 그런 움직임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런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 속에서 나와는 관계없는 너희들만의 문제라고 외치는 뻔뻔함을 본다. 짧은 교과서적 지식으로 설을 풀며 그 돌팔매의 경연장에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그 돌팔매질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 할 것인 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억울하게 우리만 걸렸다는 생각을 하게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든다. 돌팔매질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같이 아파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판도라 상자 속에 있던 마지막 희망까지 날려 보내고 싶지 않다. L형과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L형,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