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정치판의 이전투구로 벌어지는 얍삽한 첩보전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재벌기업이 이 나라를 운영하는 판 자체를 이리저리 짜 보고자 한 거대음모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사건의 본체를 불법도청에 맞추고 그 발본색원을 최우선적 과제로 주장하기도 하나 그것은 바로 이 점에서 일면적이다. 정보기관의 실체는 ‘비밀’에 두고 있다.
도청은 그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안기부와 같은 기관이 국민적 감시로부터 떠나 있을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X파일류의 스캔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인권성과 반민주성을 이미 체득하고 있기에 사법당국이 이런 정의만 제대로 집행하면 충분하다. 지금으로서는 사법처리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궁극적으로는 비밀정보기관을 혁파하거나 폐제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그 해법은 일단 정리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 사건은 ‘도청’의 외관을 넘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놓고 다투는 지배집단들간의 알력과 갈등에서 비집고 나오는 내부고발적 실질을 가진다.
특히 정경유착에 의해 급성장한 재벌기업이 그 알력의 당사자가 되면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이딴 권모술수와 음모를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하나의 증후다.
국민주권의 이념은 간 곳 없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상호간의 유착과 결착의 통로를 새로이 만들고 이를 언론이라는 공적 장치로써 포장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전체로서의 절대권력을 형성하고자 하였던 음모가 이 사건의 실질인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 사건은 체제의 왜곡을 야기하는 반국가적 행위가 된다.
실제 자본권력의 정치개입시도는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대통령선거출마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정치사적 해프닝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의 경우 삼성그룹이 금력으로써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언론을 동원하여 민중의 판단을 가리고자 한 음모는 장대한 역사의 한 축을 왜곡하는 하나의 국면적 사건이 된다.
그것은 지난 20여년간 민주화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덮고 있던 정치권력이라는 거대권력이 빠져나간 공간을 누가 채워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과대성장한 국가권력이 민중의 피와 땀에 밀려 급격히 철수한 그 공간을 시민사회의 참여적 공론들이 충전할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주장처럼 시장이 주도할 것인가의 기로에 있는 이 시점에서, 삼성그룹은 그 막강한 자본권력으로 이 공간을 사유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반국가적, 반민주적 행태가 된다.
한 외신이 이 사건의 본질을 ‘누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의 문제로 다룸은 바로 이 때문이다.
IMF의 고통을 모든 서민대중들에게 전가하는 교묘한 전략끝에 이제 세계일류기업이요 대한국민을 “먹여 살리는”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이, 알려진 것만 해도 1000억원이 넘는 돈으로써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법조를 장악하고 스스로 법이 되어 군림하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우리의 정치체제가 대한민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삼성제국으로 전락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선택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혹은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인하여 흘려야 했던 피와 땀을 이제 자본의 억압 아래서 되새김해야 하는 반복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