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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기여입학제의 다섯가지 경우
강위석 본지 논설위원
누가 나에게 사립대학 기여입학제가 허용되면 그것을 이용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치자. 이 물음에 답해야 하는 내 입장을 다섯 가지로 매겨 보았다.

사립대학 당국자가 그 하나다. 내가 그런 당국자라면 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켜 주는데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수업료를 내지 못 하는 학생을 받아 줄 마음도 없지만 수학(修學) 능력이 모자라는 학생을 뭉텅이 돈을 받고서 입학시킬 마음도 없다.

대학은 다른 비(非)학교 강습소들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수강생들이나 그 학부모가 내는 수업료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수혜자 부담 원칙이다. 다만 아무 조건 없는 기부자가 나오면 그 돈은 받아도 좋을 것이다.

대학에 재정 기여를 할 수 있을 만큼 돈 많은 학부모 입장도 상상해 보았다. 나는 돈을 내고 자식을 명문대학에 보낼 마음은 없다. 명문대학이 가진 좋은 점은 교수나 졸업장이 아니라 학생들이다. 명문대학에는 적어도 성적 경쟁에서는 우수한 학생이 모인다. 자식에게 자질 높은 친구를 젊을 때 사귈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식에게 좋은 친구를 사귈 능력과 행운이 있다면 하필 특정 명문 대학에서 그런 친구를 골라야 할 필요는 없다. 좋은 친구라는 것은 그다지 많은 숫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젊은 시절을 통하여 재능과 덕성이 우수한 친구를 사귈 기회는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세 번째로는 당사자인 학생의 입장이다. 앞의 두 입장은 실제로 내가 대학당국자도 아니고 갑부는 더욱 아니므로 순전히 상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 입장의 대답은 나도 대학을 다녔으므로 그 바탕에는 실제 경험이 있다.

만일 내가 대학에 입학할 나이로 다시 젊어져서, 행복하게도 부모가 갑부라서 공부 잘 못 하는 나를 돈으로 명문대학에 들여보내려 든다면 나는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개인적으로 위에 말한 세 가지 입장 모두에서 기여 입학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여 입학이라는 ‘제도’를 반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여 입학은 본래부터 ‘자유의 원칙’이 지배하는 영역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립되어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이 아닌 한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 자유의 원칙은 다수결 원칙보다도 우선이다. 다수결에 의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 기여 입학은 아무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기여 입학을 시키지 못하도록 사립대학을 가로 막는 것은 위해 행위다. 기여 입학은 대학, 학부모, 학생 세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는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학교의 명성에 금이 가는 위험은 그 대학이 책임질 일이다.

네 번째로 기여 입학생이 없었더라면 입학이 가능했을 학생이 떨어지는 경우를 생각하자. 사람들은 자기가 마침 이런 ‘불운’한 사람에 끼게 될까봐 기여입학제를 반대할 수 있다. 또 전국적 단일 출제에 의한 수능고사 만이 가장 ‘정의’로운 합격생 선정 기준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대형할인점이 어떤 물건을 어떤 값으로 파는가를 놓고 소비자가 항의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각 가게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일 뿐이다. 이에 대항하여 소비자는 더 싸고 좋은 것을 파는 가게에서 가서 구입하는 자유를 행사하면 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불운한 것도 없고, 정의를 따질 일도 아니다.

다섯째로 정부, 즉 권력의 입장이다. 자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권력의 영역을 좁게 하고 때로는 훼손을 입힌다. 권력은 권력을 권력이라 부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사회정의 또는 공공성이라고 부른다. 기여 입학제 반대는 권력의 프로젝트이자 프로파간다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여기에 말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5-07-11 오전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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