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된 총장은 교수들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개혁을 회피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선거의 과정은 교수사회에 갈등과 분열을 조성하고 악화시킬 수 있다. 선거과정이 혼탁해 질 수 있고, 선거 후에도 패자의 불복과 반발이 대학의 교육과 연구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이런 저런 우려에서 학원 민주화 과정에서 얻어진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우선 교육부가 국립대학에 총장직선제를 폐지할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선거가 민주의 꽃이라면, 민주의 이념이 대학사회에서부터 도전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현실의 선택은 불완전한 대안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직선제의 폐해가 우려된다면, 그 대안으로서 임명제나 간선제의 폐해도 함께 우려하면서 저울질하는 것이 옳다. 원래 임명제가 직선제로 바뀐 배경과 현황부터 검토보자.
총장직선제는 교육부, 또는 사학재단의 임명제의 부작용을 견제하기 위하여, 80년대 말의 학원민주화 과정에서 교수협의회의 설립과 함께 도입된 것이다. 그것도 실제로는 국립대학과 소수의 명문 사립대학의 경우 외에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교수협의회는 임의기구이며, 선거는 흔히 무산되거나 선거가 이루어져도 결과가 무시되는 수가 많다.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인하대의 경우, 16년간의 성적표는 두 번의 성공, 한번의 실패, 그리고 한번의 무산을 기록하고 있다.
기실 성공의 경우도, 재단의 추천을 인준하거나 재단의 내락을 동반한 것이다.
직선제라고 하지만, 교수협의회는 두 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재단측이 그 중에서 총장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또한 재단은 후보를 추천할 수 있으며, 재단과의 협조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재단추천 후보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기 마련이다.
결국 선거는 재단 추천 후보를 인준하고, 그 후보에게 학원의 창의력과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정화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재단측으로서는 그 과정이 번거롭고, 또한 그 과정에서 함축되는 견제가 불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최소한도의 견제가 학원 민주화과정에서 성취하고자 하였던 목표였다.
직선제를 폐기하려면, 이제 그러한 견제가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임명제의 폐해가 적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재단이 비리에 휩싸이고 견제가 안될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재단이 대학보다는 그룹 전체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고려에서 총장을 임명하는 수가 많다. 임명된 총장도 대학의 발전보다는 재단의 이익을 앞세우거나, 재임명이나 정치적 진출을 위하여 단기적, 과시적인 사업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개혁의 대상이자 동반자인 교수들의 창의력과 에너지를 결집시키기 어렵거나, 심지어 상당기간 갈등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임명제든 직선제든 현실을 보고, 장단점을 저울질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학원 민주를 통째로 폐기하기에는 아무래도 증거가 부족하다. 실제로 교수사회는 민주화 과정 이전보다도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수협의회는 임의기구이고 교수회의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민주의 과정을 부정하고 나면, 어디에서고 민주가 발붙이기 어렵다.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악마와 미스 프랭>은 권력과 부의 기회를 맞은 인간사회의 위선과 약점을 치열하게 그리고 있다. ‘악마’의 위협을 받으며 미스 프랭이 오히려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영웅 아합이 남긴 이런 말을 회상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바보가 있다: 위협받는다고 해서 어떤 일을 포기하는 바보, 그리고 타인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해서 어떤 일을 하려드는 바보.” 민주는 위협에 굴하지도 위협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