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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논단]'동막골'에 관한 짧은 논쟁
손광식 상지 컨설팅 회장 / 본지 논설위원
영화 한편을 참 유별난 동기로, 유별난 기분으로 감상했다. 장진 감독이 연극 대본을 만들었지만 슬쩍 메가폰을 다른 감독에게 맡겨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이다. 유별난 동기는, 주위의 논쟁에 하도 열불이 나 진짜 ‘빨갱이 영화’인지 내 딴에는 심판자가 돼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스크린이 열리면서 나비가 날기 시작하고 정신착란 증세가 있는 소녀의 천진스런 얼굴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아하, 아건 동화 같은 이야기로구나. 노랑나비들은 마지막 장면까지 스크린 위에서 맴을 돌았다. 철저하게 동화성을 암시한 작가의 메시지 전달 기법인 듯하다. 그냥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보았던들 저 가열 찬 ‘빨갱이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영화는 으레 그렇듯 환상과 현실을 착각하게 만드는 마술성이 있다. 저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동막골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쪽은 국군과 유엔군이었다. 실종된 미군 조종사를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동막골에 특공대를 투입하고 인민군의 은신처로 오판, 폭격작전을 감행한다. 두 사람의 한국군 탈영병과 세 사람의 인민군, 마을 사람이 구출한 미군 조종사는 결국 한마음으로 뭉쳐 가짜 폭격지점으로 폭격기를 유도하기 위해 기관총을 쏘다가 모두들 폭사한다. 단 한 사람, 미군 조종사만이 그 비극의 현장에서 원대 복귀한다.

모든 영화의 에피소드를 잘라내고 보면, 양민 학살의 주범은 국군과 연합군(영화에서는 미군 아닌 연합군이란 표현으로 나옴)이고 인민군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멋있게 묘사되어 있다. 바로 그렇게 보는 것이 ‘레드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게 이른바 ‘빨갱이 론’에 대한 진보세력 쪽의 반격이다.

그 반대쪽에서 응수도 만만치가 않다. 50여 년 전 직접 체험한 전쟁 속에서 실제로 목격한 것과는 너무도 멀다는 것이다.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쪽은 저 쪽이다. 그 쪽 얘기는 왜 안 나오는가.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같은 애국주의 영화가 안 될 듯싶으니까 반대쪽의 이데올로기 상업주의가 판을 친다. 젊은 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면 자기 아이덴티티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고 반미에 더욱 열을 올릴 뿐이다.

자, 제 나름대로 심리를 끝내고 판결을 내려보자. 우선 사실성. 동막골은 당시 존재할 수 없었다. 아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존재했다.

나는 당시 경기도 부곡리 ‘수리산 전투’(일설에는 중공군과 인민군 5만 명이 죽었다고도 함)가 벌어지고 있는 한 복판에 있었다.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는 들판에 모여 있던 피난민들에게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해 다수의 희생자를 내게 했다. 이 장면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재현되었다면 이건 학살이다. 그런데 당시는 전쟁 중이었다. 60여만 명의 ‘민중’을 학살하고 있다고 소리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유엔군의 폭격기가 날아오면 ‘환영’을 할 정도였다. 사실 그 비극의 날도 인민군과 피난민을 구별해주리란 판단으로 들판으로 나가 당했다. ‘동막골’은 없어도 그런 양민들이 전쟁 중에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서울고등학교 앞 돌담에 붉은 페인트로 쓴 ‘스탈린 원수 만세’를 보았고, 청계천3가 옛 변전소 앞 다리 밑에서 밧줄로 묶여 집단 학살을 당한 희생자들을 열네 살 소년 시절 목격했다. 그게 내겐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 한편의 영화는 철저히 ‘동화’이다. 평양의 인민 대학습당에서 시사회를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영화 중간에 ‘위대한 영도력’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인민군 장교가 묻자 당사자인 촌장은 “뭬, 마이 매겨주는(먹여주는) 거지 뭐” 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년 병사가 이 장교에게 남쪽이 쳐들어 온 것 아니냐고 묻자 “그건 우리 쪽에서 내려온 거야” 라고 말한다. 평양의 관객이 모두 일어나 지도자 모독이라고 할까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할까. 나도 동화 한 편을 그려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잘 만든 영화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5-09-26 오전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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