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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 개정은 국민 권리 말살한 최후의 일격
강위석 시인·시사평론가 / 본지 논설위원
다른 나라 사람은 몰라도 한국 사람들에게 생존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는 교육이다. 아니, 자신과 자녀의 교육은 생존보다 더 우위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교육은 생존을 보람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생존의 수단을 벌어다 줄 수 있는 유일한 투자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권리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존권 다음으로 교육을 받을 권리다. 권리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라는 것은 없다.

교육을 받을 권리 또한 공짜로 교육을 받을 권리도 아니고 본인의 자질이나 노력이 모자라더라도 소정 이상의 교육성과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물론 아니다. 국가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무언가를 공짜로 국민에게 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교육비는 국민이 세금으로 내며, 학업을 이수할 수 있는 자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을 받을 권리의 실제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어떤 학교를 다닐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그 전부다. 권리라고 부를만한 것도 못 된다. 이런 권리나마 한국에서는 대학 이전의 12년간 학교 교육에 대하여는 구매자의 선택권이 거의 완전하게 박탈당하고 있다. 행정기관이 배정해주는 대로 따라야 할 뿐이다.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을 봉쇄한 데 더하여 교육을 공급하는 학교의 운영, 입학과 졸업, 커리큘럼까지도 정부가 초등하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국적으로 독점하여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가 심어 놓은 전통이다.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다소 완화되다가 교육평준화, 전교조 권력 강화에 따라 독점이 점점 강화되어 왔다.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과 공급자 간의 경쟁을 완전히 봉쇄한 한국의 교육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은 철저하게 부정적이다. 대학의 등급을 매기는 잣대는 해당 대학 입학생의 수능 시험 성적의 전국적 석차가 전부다. 전공 학과도 그렇게 등급이 매겨진다.

반대로 대학과 전공학과의 전국적 석차가 한번 매겨지면 입학 지원자는 자신이 받은 수능시험 전국 석차로써 입학이 가능한 대학과 학과 가운데 최고의 석차를 가진 곳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한 번 일류 대학은 영원한 일류대학으로 남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학교나 교수 사이에 더 좋은 학생을 뽑기 위하여 더 좋은 교육을 공급하려고 경쟁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평준화는 차별을 없애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차별을 영구화하고 그 차별조차 썩은 것이 되게 할 뿐이다.

고등학교 이하에서는 어떤가. 학교와 교사들은 경쟁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전교조에 대한 충성 경쟁이 아닌 한 서로 경쟁을 하면 전교조의 눈 밖에 난다. 남는 것은 학생들 사이의 경쟁만이다.

이 경쟁을 유발하는 것은 대체로 그 부모의 교육열이다. 이런 부모가 많이 사는 곳은 시골보다는 도시, 그 가운데서도 서울과 부근 신도시다. 경쟁의 실천은 과외 공부다. 대학 수능 시험에서 높은 전국적 석차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학교 사이에 그리고 교사들 사이에 경쟁이 있다면 학생들의 경쟁은 과외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학교 안에서 충분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것이 과중한 사학비의 진실이다. 초·중·고등학교의 평준화와 정부 독점은 과외 학원만 번창시키고 국민의 교육비 부담을 가중시켰으며 가난한 학부모의 자녀는 대입 경쟁에서 탈락하는 불평등을 만들어 냈다.

지난 9일 국회가 개정한 사립학교법은 해괴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14조 3항은 학교법인 의결권의 4분의 1 ‘이상’을 학교법인 ‘재단(財團)’에 자산을 출연한 자가 아닌 자가 추천한 사람이 차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재단의 비리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단 한가지다.

형법상의 비리가 있으면 형법으로 처리하면 된다. 비리에 이르지 않는 불합리한 경영은 교육 수요자의 학교 선택권과 공급자인 학교 간, 교직원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하여 해소 되어야 하고 또 그것 밖에 길이 없다. 재단 출연자 아닌 자가 뽑은 이사에 의하여 경영의 투명화나 효율화가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출연자나 출연자가 선임한 자에 의한 이사 선출권은 출연자의 재산권이다. (임광규, ‘사립학교의 재산은 누구의 것인가’, 자유기업원 인터넷 참조). 재산권은 배타적이며 이 배타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지고 있는 가장 큰 책무다. 재단에 출연한 자의 의사에 반하여 법이 강제로 재산권 없는 자에게 이사 선출권을 주는 것은 법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사명을 저버리고 침해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정부가 학교 운영비에 큰 금액을 보조한다고 해서 사립학교 법인에 대한 재산권을 가진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이사 자리 내 놓도록 하는 법을 정할 수는 없다. 정부 보조금은 미국에서 그러는 것처럼 영수증(바우처)에 의하여 정부가 학생의 수업료를 학교에 내어주는 제도로 차라리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출연자 추천 이사의 숫자, 즉 출연자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 가능 범위를 ‘xx 이하’라는 상한으로 정하지 않고, 반대로 ‘xx 이상’이라는 하한으로 정한 것은 그야 말로 가관이며 해괴함의 극(極)이다. 이런 법을 제안, 가결하고 선포하는 사람의 머리에는 사유재산 제도는 악(惡)이라는 등식이 굳게 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개정법 20조 2항에는 이사취임 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 조항과과 앞에 말한 재산권 침해 ‘하한’ 규정이 결합하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립학교 법인은 전교조에 의하여 선임되거나 전교조에게 복종하는 이사로만 구성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의 학교 교육은 공·사립 할 것 없이 철저한 국가 독점 아래 있다. 새 사립학교법이 발효한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왕의 독점 아래서는 가장 나쁜 교육을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면 새 법에 따른 독점 아래서는 돈(세금 포함)을 내고 독약을 사서 내 자식에게 먹여야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사립학교 재단 출연자의 재산권이 아니다. 그들의 재산권이 무너짐으로써 학교와 교사들 사이에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전교조의 지령을 더 잘 수행하는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렇게 재산권을 침해하는 선례가 다른 분야로 전이되어 확대되면 주식회사의 이사도 주주 아닌 단체가 추천하는 자가 4분의 1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법 개정 안이 곧 뒤따를 수 있다. 재산권 만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의 생명과 자유를 김정일 체제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자는 데에 이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권리는 이제 낙동강 전선 이남으로 후퇴 당했다. 전멸이냐, 반격이냐 만이 문제의 전부가 되었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5-12-28 오전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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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사랑 이 악법으로 생기는 자리는 대학에만도 1천여개에 이른다. 이 자리를 정부, 정치권, 전교조, NGO들이 나눠먹을 것이다. 200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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