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학가 환경은 학문보다는 차라리 매음질 하기에 더 편리한 곳이다. 한국의 대학가를 바라보는 외국 언론의 시각이 그렇게 고정되어 있다. 사람은 뇌경색과 같은 것으로만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치질때문에도 좌불안석하듯이 서울의 대학가는 대학인들에게 그렇게 작동한다. 심한 말처럼 들리지만, 서울의 대학주변은 매음굴처럼 음산하기 초차하다. 서로가 그렇게 묵인하며 즐기고 있다. 유명대학 주변일수록 더 심하다.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탈적인 환락 그 모든 것이 그곳에서 숨쉰다. 그곳에 변태의 욕망은 충만하나 초월을 위한 고뇌와 사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취하고 그저 광란하라고 가르친다. 우리 대학주변이 그렇게 변질되어 가는 것은 대학의 역사가 짧아서 만이 아니다.
서울은 겉보기에 살기편한 곳이다.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의 분주함도 경악스럽다.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들도 그럴싸 하다. 학생들 저차도 한 밑천 잡으려는 재테크에 열심들이다. 그것은 어쩌면 서울인의 역동성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서울은 배움을 찾아나서는 대학인들에게는 짜증스럽다. 대학인들이 살아 주기에 편한 도시도 아니다. 대학인들에게 그 무슨 사회적 배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살이에서 높은 생계비는 그들은 질리게 한다. 서울의 생계비용은 세계 여러 도시 가운데 16위나 될 정도로 높다. 서울은 이제 홍콩(20위)주민보다도 더 생계비용을 강요하는 소비도시가 되어 버렸다. 생계비용이 높아질수록 대학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허기일 뿐이다. 굳이 이런 도시에서 질 낮은 대학교육을 받는 것은 손해일 수도 있다. 해외도피유학을 탓할 일도 아니다. 서울 특유의 문화들이 대학 교육환경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 서울에서는 지적인 내음세를 맡아보기도 힘들다. 지성인은 없고 선동가들 만이 난무할 뿐이다. 체면도 없고 양심도 거세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개나 소도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지껄이면 그럴듯 하게 비쳐지는 형국들이다. 선동은 있지만 지성과 지력은 척박하다. 하는 짓들이 '개그'고 내보이는 모습이 '거시기'들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지성을 찾아보기가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의 지적 분위기를 파악하려면 대학가부터 가보라는 격언이 있다. 대학의 경쟁력이 대학주변의 교육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주변의 교육환경개선은 대학 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학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했던 대학설립자들을 탓한다고 풀릴 일도 아니다. 일들을 제대로 풀어나가려면, 이제라도 대학가 지역주민의 이해관계를 교육적으로 중재해 줄 수 있는 서울시장의 도시행정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대학들과 교육시설 개방을 위한 상호계약이라도 맺어 대학의 교육환경보존의 영역을 설정해 주어야 한다.할 수만 있다면 대학주변을 녹지공원이나 서점문화가로 바꾸는 도시재개발 계획을 세우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청개천을 복원했던 것 처럼 대학가 환경의 문화녹지사업을 추진해야 하겠기에 정치권력의 진지한 고뇌가 요구된다. 이런 사업을 위해 굳이 정치적 야심이 가득한 정치인의 또 다른 출현까지 기다려야 될 일은 아닐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