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양적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지만 질적 수준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2004년 스위스 IMD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경쟁력은 평가대상 60개국 가운데 59위, 대학교육이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도에 있어서도 52위에 머무는 것으로 평가됐다.
“총체적 난국에 처한 고등교육 시장"
2004년 고등교육 진학률이 81.2%에 이를 정도로 고등교육이 보편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확대된 교육공급으로 인해 대학 입학정원이 학령인구를 웃도는 공급초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동시에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한쪽은 학생자원이 넘쳐나고, 한쪽은 부족해 교육의 질적 수준이 동반 부실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대학졸업자의 질 관리 미흡으로 나타나고 있는 바, 전경련 조사를 비롯한 각종 조사에서도 기업의 대학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대학졸업자와 기업의 인력수요간 질적 불일치도 여전히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초·중·고 및 대학의 인재양성 규모가 상위교육단계로 갈수록 축소되지 못하는 원통형 구조인 반면, 산업에서의 인력수요는 저위기술로부터 고위기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피라미드형 인력수요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인력 수요 대비 고등교육에 진입하는 인적자원의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점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과제다.
이상에서 언급한 현 고등교육 시장의 문제점은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 수도권대와 지방대 간 왜곡된 서열화 구조, 대학 본연의 기능인 교육과 연구 성과에 있어서 국제 경쟁력 미흡, 교수 대 학생수로 대변되는 교육/연구여건의 열악, 산업인력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학의 교육과정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정부 정책의 틀 아래 각 대학의 생존 전략 있어야”
‘산업에서의 학력별, 직업별 인적자원에 대한 처우와 직무환경’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요인이지만 단기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난제를 제외한다면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문제 인식은 전술한 바와 유사하며 이를 바탕으로 각종 관련 대책들이 수립, 실시되고 있다.
특히 교육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각종 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의 구조개혁과 연계해 추진되고 있어 지방대 육성 및 특성화 추진, 대학간 통합을 통한 모집정원의 감축 등을 유도하고 있다. 2004년부터 실시된 지방대학혁신역량 강화사업(NURI사업)은 지방대의 특성화 역량을 제고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하되, 일정 수준의 교육여건을 확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구조조정 사업 역시 국립대는 물론 동일법인 산하의 대학간 통합을 장려하고 모집정원의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2009년까지 대학모집정원을 9만여명 감축함으로써 87개 가량의 대학을 줄이는 것은 물론 교수1인당 학생수를 국립대는 21명, 사립대는 24명 수준까지 끌어내려 교육/연구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것으로 현재 몇몇 국립대와 학교법인에서 대학간 통합계획을 제시한 상태다.
이같은 교육부의 구조개혁 정책이 실효성 있게 추진돼 목표한 결과를 얻는다면 우리의 고등교육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까? 학생수를 줄임으로써 교수대 학생비가 개선되면 교육의 질적 수준은 당연히 높아지는 것일까? 고교졸업자수와 대학졸업자수 간 원통형 구조가 개선되는 반면, 전문대 졸업자와 4년제 대학졸업자 간 역피라미드 구조의 심화는 산업인력의 수요구조와 국제경쟁력에 적절한 것인가? 위기에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는 전문대가 4년제와의 통합 또는 4년제로의 전환 등을 통해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경우 직업교육의 종국은 4년제 대학으로 대체되는 것인가? 학력인플레이션이나 청년실업이 오히려 심화될 우려는 없는 것인가?
단기간 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무리가 있다. 정부의 정책대안이 실효성을 거둔다고 해도 전 국민이 이해관계자인 교육부문의 환경변화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 이외의 다른 문제들이 예기치 않게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산업인력 수급구조 개선,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추진되는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정책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각 대학은 해당 대학의 생존/발전을 위한 핵심역량이 무엇이고, 어떻게 환경변화에 대응하면서, 대학에 들어오고자 하는 수험생은 물론 졸업생을 선발하는 산업체들로부터 선호되는 대학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2020년, 2030년에도 그 대학이 존재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대학경쟁력은 수요자 요구에 부합하는 것”
최근 다소 소강국면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상당기간 2008학년도 대입에 적용할 학생선발방식에 대한 논란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적이 있다. 물론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우수하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매우 분분할 수 있다. 12년간 초·중·고교의 교육과정을 거쳐 그 사람이 어떤 대학교를 들어갔느냐가 그 사람의 나머지 인생을 결정해서는 곤란하다. 그 사람이 학업을 마치고 더 긴 인생행로인 산업사회에 발을 디딜 때 그 사람이 어떤 실력과 인성을 갖추었는가가 더욱 중요한 판단기준이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교육과정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2004년 기준으로 4년제 대학 교수의 1인당 연간 논문 편수는 1.93편이고 저서는 0.18편에 불과하며 학생들의 독서량은 선진국의 4분의 1, 과제와 수업량은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적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각 대학은 학생 선발방식에 매달려서는 곤란하며, 선발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이란 무엇일까? 교육, 연구, 봉사를 대학 본연의 기능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연구와 봉사조차도 교육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이란 관점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교육, 다시 말해 어떤 인재를 양성하느냐가 대학경쟁력 판단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경쟁력을 단순화해 표현한다면, 산업사회에서 그 대학의 졸업생을 서로 채용하려고 하고 이로 인해 그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줄을 서는 것, 즉 졸업생의 수요자와 고등교육의 수요자로부터 동시에 선호될 때 그 대학은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나아가 각 학과는 교육과정을 통해 어떠한 인재를 배출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졸업생을 수요하는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들의 요구를 교육과정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다소 구태한 표현을 빌면 교수 본인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산업적 상황을 고려해 학생들이 학습해야 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교육과정은 졸업생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게 되고 수요자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입시선호에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구조의 본질인 것이다.
“대학 스스로의 색깔을 가져야”
대학의 인재양성 분야에 관련된 정책 또한 대학의 색깔, 대학의 브랜드 인지도와 관련해 대학경쟁력의 본질을 구성한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종합대화 하면서 특성화의 이미지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대부분의 대학이 유사한 학문분야를 갖추고 있으며 최근에는 학생모집의 어려움이 겹치면서 여건에 대한 충분한 준비도 없이 타 대학에서 학생모집이 잘됐다는 소문에 쉽게 학과를 신설하고 학생모집이 안되면 또 쉽게 학과문을 닫아버리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학사분야는 대학의 자율권에 속한다는 점에서 교육부로서도 조정, 통제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년제는 물론 전문대마저도 종합대화 하면서 각 대학이 스스로의 색깔을 형성할 수 있는 특성화된 경쟁력 있는 분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학개혁이 시작된 이래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부가 대학정보공시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언명한 점은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공급초과구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교육부가 대학의 구조개혁을 시장에 맡겼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수도권 대 지방대, 4년제 대 전문대 등으로 단순 서열화된 왜곡된 교육구조 하에서 교육 수요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요자 스스로 대학 및 학과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비교적 짧은 시간에 시장논리에 입각한 구조개편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고등교육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발표되는 자료의 신뢰성이 보완돼야 한다는 점, 단순한 양적 지표 외에도 질적 지표(예를 들면, 취업률뿐만 아니라 취업의 질적 측면-급여/취업지속성/취업처 규모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학정보공시제도의 결과는 대학으로 하여금 선택과 집중의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회의 평등주의로 경쟁력 강화 유도”
마지막으로 지식기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셋째도 사람이다. 이점은 대학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대학운영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교원과 직원이 각자의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려하는 제도의 도입이 대학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든 동일한 배분이 일어나는 결과의 평등주의가 지속돼서는 대학발전의 추진력을 확보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과실을 향유할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되 누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공정하고 명확하게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이 이루어지는 기회의 평등주의로 대학운영의 기본방침이 전환돼야 한다. 이를 통해 구성원 각자의 자발적 노력이 경주되고 선의의 경쟁체제가 구축될 때 대학의 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쉬운 것이 아니다. 기업에서의 변화가 쉽지 않을 진데 하물며 대학에서 변화를 추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의 최고경영층이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솔선수범해 변화의 선봉에 서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